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은 과연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그냥 이야기꾼이 아니라 내면적 터치와 추상적 사고에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한 가지 주제에서 파생되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내용을 곱씹어보게 만든다.

1부에서는 스스로를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고 표현했던 아버지 이야기며, 첫 월급을 타 핸드폰과 함께 15만원을 건네던 딸의 이야기 등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통해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내가 <바다의 기별>에서 가장 감동 깊게 읽은 부분은 2부에 등장하는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였다. 얼마전 타계해 다시는 주옥같은 글을 남길 수 없게 되셨지만 박경리 선생님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숙연함을 자아내게 한다. 모든 사람들의 포커스가 출소하는 김지하에 맞춰져 있을 때, 먼 언덕 위의 박경리에 주목했던 김훈의 시선이 뛰어나다.

그 외에도 2부에서는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라는 글도 재미있었다. 어렸을 적 꿈이었던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통해 해학과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내게 이 책의 제목을 정하라고 한다면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로 정하겠다. 제목도 쉽고, 머리에도 쏙쏙 들어오고, 내용도 좋고...(참고로, 예전에 또 다른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은 정말이지 제목을 무척 잘 지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그 역시 책 안에 있는 한 이야기의 제목에서 차용한 것이었다.)

3부는 주로  강연한 것을 묶었는데 "어렸을 적 미군으로부터 초콜릿(저자의 표현을 존중하자면 쪼꼬렛)을 얻어 먹고 다니던 부분의 기술이 참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물론 전반적인 내용은 언어, 말, 사물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단어 하나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무척 고민을 많이 하는 저자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머지 부분은 다른 책들의 서문이나 수상소감을 묶은 부분인데 몇 개 읽다 말았다. 책의 서문은 그 본책과 함께 읽어야 제맛이라는 생각만을 남기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부분과 함께 한 가지 더 아쉬운 부분은 칠장사 이야기를 비롯한 저자의 기행문 부분이다. 예전에 자전거 여행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김훈의 기행문들은 왠지 조금 집중이 안 되는 듯 싶어 아쉽다.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과 같은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통해 각 주인공들의 내면적 성찰을 깊이 있게 끄집어냈다면 <바다의 기별>에서는 저자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참 진솔하고 솔직하게 들려준 듯 싶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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