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의 허상

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도리스레싱. 사실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기 전에는 도리스레싱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의 작품들을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저 단순히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레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도 책 한 권은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사서(가격도 최근의 다른 책들에 비해 무척 싸서 마음에 들었다) 읽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행복을 추구하는 한 "다둥이 가정"에 다섯째 아이가 탄생하면서 그 행복이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에서 넷째 아이까지 태어났을 때는 사실 시간의 흐름도 빠르고 등장인물들도 여럿이 나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 "벤"이 등장하면서 모든 관계들도 명확해졌고 이야기의 흐름도 긴장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전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조금 특별한 아이 "벤"으로 인해 완성되어가던 데이비드와 해리엇의 '행복한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된다. 일반적 아이들과는 다른 거부감을 갖게 하는 모습과 행동들, 도저히 그 나이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힘, 이런 것들로 인해 사람들은 벤을 기피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친척들과 가족들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집을 멀리하고, 자신의 자녀들까지도 뿔뿔히 흩어지면서 가정은 파괴되어 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 레싱은 자신이 앞에서 제시했던 "행복한 가정"이라는 어떤 형상화 된 인식을 비웃는다. 작은 이물질(? 실제로 이 책에서는 벤을 하나의 이물질처럼 그리고 있다) 하나로 인해 와해될 수밖에 없는 "행복한 가정"은 그저 허상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중간쯤 읽어가다가 나는 혼자 미리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야기의 끝에 가면 벤은 사실 괴상한 아이가 아니었을 거야, 가족들, 특히 해리엇(벤의 엄마)의 망상 속에서 조금은 다른 아이가 특별하고 괴상한 아이로 형상화된 것일거야."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의 결말은 특별한 반전이나, 자극적 요소가 없다. 그저 그렇게 성장한 벤이 그 또래의 나쁜? 친구들을 만나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면서 끝나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행복한 가정의 허상을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회 마이너리티(벤)의 소외? 그도 아니면 다자녀 가구의 사회적 편견이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영국에서 한동안 살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도 조금은 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