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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82년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되던 해 봄,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프로야구의 개막보다 더욱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다. 바로 초등학교 입학. 물론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왼쪽 가슴에 하얀 가재손수건을 달고 내 몸집에 비해 과도하게 큰 가방을 메고 학교 운동장에 선 것이다. 입학식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 서 있던 내 마음은 삼미슈퍼스타즈 선수들이 프로야구 첫 경기를 위해 운동장에 섰을 때만큼 엄숙하고 떨렸을 것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1982년의 나는 그만큼 어렸기 때문에 프로야구 시대의 개막이라는 감개무량함은 내겐 없었다. 실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원년 우승이 OB 베어스였다는 사실 조차도 난 몰랐다. 대학에 오자 서울 놈들, 부산 놈들, 광주 놈들, 대전 놈들이 여기저기서 모여 제각각 자기 연고의 팀 자랑을 해댔다. 다행이 그 시절 나의 인천을 대표하는 구단은 삼미도 아니고, 청보도 아니고, 태평양도 앙닌 현대 유니콘스였다. 만년 꼴찌 팀은 아니었다. 물론 현대는 인천을 버리고 도망가긴 했지만...
그랬거나 말거나... 어린 시절 내가 프로야구를 알게 된 것은 3학년 때부터였다. 그때는 이미 삼미가 한차례 폭풍을 몰고온 뒤였기 때문에 인천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를 해댔다. 게다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바로 삼미슈퍼스타즈의 영원한 4번 타자 김진우 선수였다. 학교에도 몇번 왔다고 하는 소문은 들었지만 얼굴을 직접 본 것은 교장 선생님께서 은퇴하시던 5학년 겨울뿐이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내가 삼미슈퍼스타즈를 알게 된 1984년 3학년 때, 나는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 중 몇몇은 진짜 팬클럽이 되어 야구 잠마와 모자를 쓰고 학교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시절 박민규씨는 회원 가입비가 5천원이라고 말했지만 그 돈을 주고 야구팀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특혜받은 아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우리집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리틀 슈퍼스타즈는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나로하여금 많은 향수와 기억을 되새기게 한 책이었다. 내고향 인천에 대한 이야기, 당시 프로야구에 대한 이야기, 시대적 현실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 책이 아닐 수 없다. 0.125의 승률로 대표되는 삼미슈퍼스타즈와 자신의 모습과의 오버랩 시키는 것은 작품을 쓴 작가이겠지만 삼미의 팬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모두가 자신의 모습속에 삼미슈퍼스타즈를 오버랩시켰을 것이다. 물론 나역시 그랬고......
그랬거나 말거나... 독특한 문체와 기발한 사고, 글솜씨, 글을 풀어나가는 독특한 능력...... 박민규 님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당시 삼미슈퍼스타즈(작가는 삼미슈퍼스타즈 이후 야구계를 떠난 듯싶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삼미 팬들은 후신인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 현태 유니콘스 까지 이어지는 모든 팀들을 목청 높여 응원했다.)를 응원했던 사람뿐 아니라 프로야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면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책일 것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아마도 0.125의 승률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미 사라져버린 야구팀에 접합시킨 점일 것이다. 그 점이 가볍고, 해학적인 글에 무게감을 주는 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 읽고 나니 왠지 삶의 의욕이 사라진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