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우리는 가족이었을까?
프란츠 카프카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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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몇 년 전인가, 한동안 이런 질문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게 SNS 상에서 유행했었다. 당시 보자마자 에프킬라를 뿌려버릴 것이라든지, 혹은 우리에 가두고 소중히 키운다든지 등 여러 재밌는 답변이 담긴 카톡 캡쳐본이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는데 나 역시 그걸 보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이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에서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표지의 크나큰 벌레 삽화와 우중충한 채색에서부터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벌레'가 소재로 사용된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명작이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인 카프카의 "그" 변신을 20대 중반이 된 지금,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줄거리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p.11

변신은 약 150페이지로 소설의 길이 자체는 굉장히 짧은 편이다. 플롯도 단순하다.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 그레고리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 판매원으로서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던 직장인 그레고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기력감을 느끼며 아침을 맞이한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려고 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몸이 하루아침에 다리 여럿 달린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 당혹감을 채 수습하기도 전, 자신의 결근 사실을 알자마자 집으로 달려온 상사, 그리고 일어나지 않은 그레고리를 걱정했던 가족들은 곧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길로 그레고리는 한순간에 직장을 잃은 채 가족들의 무시와 경멸을 받으며 벌레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졌던 그레고리의 벌레화(변신)로 인해 가족들은 당장 재정 상태를 걱정하며 각자 새 직업을 찾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의 이런 한숨과 어려운 상황을 엿듣던 그레고리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을 참을 수 없어 좌절한다. 끼니 때마다 식사를 가져다주는 여동생을 보며 그레고리는 그렇게 하릴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낸다. 부모님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조차 꺼려 그를 보러 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그는 가족들의 하나밖에 없던 소중한 가장에서 한순간에 가장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 결국 그레고리는 분노한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가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채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다.

해석 및 느낀 점

이렇게만 보면 단순히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그저 안타깝게만 느껴지지만, 그레고리의 이 '벌레'로의 변신에서 '벌레'가 사실은 '한순간에 모종의 이유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 사람'의 비유적인 표현이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매일 출장으로 지내는 일의 긴장감은 내근직보다 훨씬 크고,

기차 환승 걱정, 불규칙하고 좋지 않은 식사, 자주 바뀌고 지속되지도 않으며

진심은 전혀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시달리다 보니 이 여행판매일의 괴로움이 배가되는 느낌이었고,

모든 것들을 악마가 가져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그레고르는 이런 상태에서 책임자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직장에서의 입지가 극도로 위태로워질 수 있었는데 부모님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

그들의 대화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로 바뀌면

그레고르는 항상 문에서 손을 놓고 문 옆에 있는 차가운 가죽 소파에 몸을 던졌다.

수치심과 슬픔으로 몸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의 독백

즉, 약간의 개인적 해석을 덧붙여, 벌레는 단순히 비유였고, 소설 속 그레고리가 어떠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로 인해 한순간에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능력을 잃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된, 그래서 그의 가족들이 그를 '벌레'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생각해보라. 소설 내내 그레고리의 심리는 벌레가 되고 난 직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해서 '가장으로서의 무게, 더 이상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되고 있다. 실제 그가 벌레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자신을 해고하지 말아 달라며 책임자에게 애걸하는 것이었다. 가족들 역시 그가 벌레가 되자마자 한 생각이 바로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갈 것인가'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현재 재정상태와 미래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에 대한 큰 안도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즉 소설이 전반적으로 '돈'에 초점을 맞추어 심리가 서술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작가 역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 그레고리를 의도적으로 벌레로 비유해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카프카가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여러 불구가 된 사람을 많이 보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한 해석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사실 나도 책을 읽는 내내 그레고리가 정말 벌레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쩔 때는 그레고리를 모종의 사고로 한순간에 불구가 된 사람에 대입해보기도 하였고, 어쩔 때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집 밖에 못 나가게 된 사람, 어쩔 때는 최근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히키코모리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가족은 이제껏 그레고리가 벌어다 준 돈으로 굶지 않은 생활을 유지하였음에도 그레고리가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자 곧바로 그를 벌레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그는 자괴감에 빠진 채 우울한 끝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책장을 덮자마자 머릿속에 이러한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의 존엄성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가?'

물질주의, 자본주의가 팽배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득'을 벌지 않는 사람을 굉장히 한심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 부모님을 외면하는 자식들도 허다하며, 그들을 짐짝으로 여기며 혀를 찬다. 공황장애로 밖에 못 나가게 된 사람들도 그게 다 마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해서라며, 왜 사람이 강하지를 못하냐, 아득아득 이를 갈아 돈을 벌라 질책하기도 한다. 돈을 벌지 못하면 한순간에 인간의 존엄성마저 박탈당하며 벌레처럼 취급받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욕하는 가족들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냐하면, 솔직히 그것 또한 마냥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들 몫만큼 벌어야 하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그만큼 벅차기 마련이며, 사지 멀쩡한 사람이 일은 안 한 채 집에서 놀고만 있으면 다른 가족들 입장에선 당연히 답답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돈을 위해, 그리고 돈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돈을 버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에 그것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세상을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못 하게 되면 결국 그레고리처럼 암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레고리가 마냥 불쌍한가? 가족들이 마냥 나쁜가? 선과 악은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을 여기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답변을 못 내리는 질문이라 생각해 그냥 그렇게 이 책에 대한 나의 평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돈은 사람의 감정마저 희석시키며 동정을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그레고리의 가족이 부유했더라면 당장 재정 상태를 회복시킬만한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는 좀 더 그레고리의 변신에 대해 감정적 공감을 표하지 않았을까), 둘째, 경제 능력 상실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불안감을 전해준다는 것.

참 안타깝고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것이 또 현실이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통용되는 이러한 명작을 만든 카프카의 통찰력과 비유에 감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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