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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2 (무선)
찰스 디킨스 지음, 이창호 옮김 / B612 / 2024년 6월
평점 :

세기의 소설가로 알려진 찰스 디킨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 누구도 한번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력과 감질나는 사건 전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는 명실상부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의 베스트셀러이지만, 이번에 B612북스에서 출간된 <오래된 골동품 상점>은 생전 처음 들어본 그의 작품이라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오래된 골동품 상점>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권당 약 500페이지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야기는 한 어린 소녀와 그녀의 할아버지가 펼쳐나가는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여쁘고 똑똑하며 고운 마음씨를 지닌 넬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할아버지를 모시며 가난하게 살아가는데, 할아버지는 그런 넬에게 죽기 전 큰돈을 남겨주고 싶어 노름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도리어 도박에 미쳐버리게된 할아버지는 노름을 이어나가기 위해 성격이 괴팍한 난쟁이 퀼프에게 거액의 돈을 벌리게 되지만, 돈을 갚지 못해 결국 자신이 소유한 골동품 상점을 모두 그에게 넘겨준 후 넬과 함께 도피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와중에 퀼프와 넬의 친오빠, 그리고 그의 친구 스위블러는 할아버지에게 분명 넬을 위해 따로 모아둔 거액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그들의 뒤를 쫓게 되는데...
사실 소설의 제목만 봐서는 어느 한 마을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하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전개될 줄 알았지만, 줄거리는 생각 외로 처참했다. 넬은 할아버지에게 헌신하며 할아버지가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위로도 하고, 애걸도 하며, 눈물도 흘려보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노름에 미쳐 넬이 잘리 부인을 도우며 번 돈 마저 모두 가져가 탕진해버린다. 이 얼마나 씁쓸한 현실인가. 소설을 읽는 내내 곁에 아무도 보호해 줄 이 없는 이 넬이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냥 할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버리기를 바랐지만, 그러기엔 넬의 심성이 너무 착하였다. 주위엔 넬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어른들로 가득하였고, 그 모든 것은 작은 아이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내가 생각하기에 험난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어린이 캐릭터를 찰스 디킨스는 매우 애정하는 것 같다. 이런 레파토리로 많은 소설을 출간한 것을 보면. 실제로도 찰스 디킨스는 일찍이 공장에서 일하며 학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하니, 그가 자신의 많은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을 투영해서 써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위로하는 그만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여담으로,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만의 생생하면서도 자세한 묘사력이 돋보였는데, 특히 초반에 자신이 직접 책 속의 엑스트라가 되어 주인공들을 설명한 방식이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내가 책 속의 인물이 되어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등장인물을 소개했으니, 이제부터는 서사의 편의를 위해 주요 등장인물이 알아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1권 후반부에 보면 평소에는 한없이 너그럽지만, 도박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이 돌변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는데 와우.. 진심 그 어떤 소설의 빌런들보다도 더 소름 돋고 참혹하게 느껴졌다. 도박은 정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책. 애초에 일확천금을 좇는다는 그 논리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과연 넬은 할아버지를 도박의 굴레에서 구제해 냈을까? 모두들 찰스 디킨스가 펼치는 이야기의 나래로 풍덩 빠져보자.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