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득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국내에 제일 많이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아마 <오만과 편견>일 것이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만도 수십 종으로 출판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다. 영국 작가, 하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제인 오스틴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조지 헨리 루이스는 제인 오스틴을 '소설을 쓰는 셰익스피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들의 문장을 비웃어버리고 자신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 말고도 <이성과 감성> <엠마>
<맨스필드 파크> 등을 썼지만, 그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작품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 <설득>이다. 오스틴의 예전 작품들과
비슷하게 <설득>도 중류계급의 일상생활, 특히 남녀의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라는 협소한 소재와 주인공이 사는 마을이나 속해
있는 가문 정도의 배경만으로 당대의 영국 사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해냈다.

20대 후반의 앤. 당시에는 노처녀였다. 허세와 과소비가 심한 언니와 아버지 때문에 재산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빼어난 미모도 아닌 앤은 거의 결혼 포기 상태다. 재산이 거의 떨어지자 집을 내놓게 된 앤. 집을 사겠다고 한 부부는, 다름아닌 앤과 8년 전
혼담이 오갔던 남자 웬트워스 대령의 누나 부부였다. 그렇게 앤과 웬트워서 대령은 어색하게 재회하게 된다. 8년 전에는 해군이란 직업이 탐탁치
않게 여겨졌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거센 바닷바람과 힘든 뱃생활으로 외모가 많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의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인 레이디 러셀은 웬트워스 대령과의 혼인을 반대했고 천성이 여렸던 앤은 그렇게 웬트워스 대령과 헤어졌었다. 개암나무
열매처럼 단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설득'당하고 그렇게 진정한 사랑과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8년 후 지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한 웬트워스 대령과 꼼짝없이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래가 없어서 헤어졌던 전남친이 8년 뒤, 잘나가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새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사실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어떻게
오해가 풀리는지 읽다보면 세밀한 문장들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면 그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괜히 '지난 천 년간
최고의 작가' 2위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앤은 다른 오스틴의 작품속 여주인공들처럼 매력적이지는 않다. 엠마처럼 상냥하고 발랄하지도 않고,
엘리자베스처럼 똑부러지고 당당한 편도 아니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어렸을 적 "어려서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강요받"아
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앤이 어떻게 8년 후에 감성적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택하게 된 것일까.

제인 오스틴이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서 얘기했던 것은 당대 시대 상황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년 전 영국에서 결혼은
가장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남자의 외모, 평판, 가문, 재산에다가 성격까지 고려해야 했으므로. 그중에서 제일 따졌던 것은
가문과 재산이었나보다. 로맨스에 시대배경에다가 비판의식까지 끼얹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당시에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0년 전 영국이나, 21세기 영국이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 지금도 여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꿈꾸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