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 웨스트
살만 루슈디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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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넘나들며 각종 모티프들을 갖고 노는 살만 루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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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만화로 읽는 세계문학' 시리즈 같은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롯해서 『데미안』『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고전을 많이 읽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 다시 꺼내들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얼마나 놀랬는지. 초등학교 때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다양한 메시지들이 담긴 걸작 중에 걸작이었다. 『데미안』도, 『수레바퀴 아래서』도 진지한 작품이었다! 이런 걸 만화로 읽고 읽었다고 말하고 다녔다니... 얼굴이 붉어진다.



이번에 읽은 『프래니와 주이』는 사실, 처음 들어본 작품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인 거 같았는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샐린저의 가장 유명한 책일지는 몰라도 『프래니와 주이』를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고 극찬을 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주제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슷하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는 삶에 대한 의문과 제대로 살고 싶은 스무살 젊은이의 고민.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은근히 묻어나오는 샐린저식 유머까지. 왜 <가디언>이 극찬을 하는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진지하고 깊다.



프래니와 주이는 글래스 가문 일곱 남매 중 여섯째와 막내다. 막내인 프래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한다. 자기 입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자기 머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연극을 전공하는 그녀는 갑자기 연극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에고이스트' 같다며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해댄다. 프래니의 남자친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데이트를 엉망으로 마친 다음날, 프래니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울고만 있다. 오빠인 주이는 그런 프래니가 걱정된다. 주이는 엄마인 글래스 부인과의 길고 긴 대화 끝에, 프래니에게 자신이 겪어왔던 삶이란 것을 이야기 해준다. 오빠 주이 역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연기자이기 때문에 프래니가 하는 고민들을 똑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조금은 신랄하게, 하지만 걱정이 담뿍 담긴 조언을 해주고 프래니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자기가 자기일을 열심히 할 때 그 의미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남매는 각자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무사히 잠에 들 수 있게 된다.

 

 

"나는 경쟁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모르겠어? 난 내가 경쟁을 하려 할까봐 두려워. 그게 바로 내가 겁내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연극 전공을 그만둔 거야. 내가 다른 모두의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끔찍하게 길들여졌다고 해서, 내가 갈채를 보내고 나를 극찬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옳은 것이 되는 건 아니야. 난 그게 부끄러워. 신물이 나.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용기를 갖지 못한 것이 신물이 난다고. 화려한 평판 같은 것을 바라는 나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신물이 나.”


“너는 왜 그렇게 허물어져버린 건데? 그렇게 힘껏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면 왜 그 힘을 자신을 제대로 열심히 지탱하는 데 쓰지 못하는 거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일은, 연기야. 원한다면, 신을 위해 연기하고, 원한다면 신의 배우가 되어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게 또 있겠어? 원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해봐. 노력하는 건 괜찮잖아.”

 

 

 

 

엄마가 끓여주는 닭고기 수프



까칠한 여섯째와, 울고만 있는 일곱째를 둔 엄마 글래스 부인의 심정은 어떨까. 글래스 부인은 아들이 자기한테 제발 좀 나가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도 무시하고 걱정어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 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그리고 끓여놓은 '닭고기 수프'를 먹으라며 끊임없이 권한다. 처음에 주이와 글래스 부인이 툭탁툭탁 대화를 할 때는 답답했었다. 아니, 왜 저 아줌마는 아들 목욕하는 욕실에 들어와서 저렇게 끝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걸까, 수프 안 먹는다면 안 먹는 건데 왜 자꾸 권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주이가 "너는 누군가 네게 축성한 닭고기 수프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을 때 그것을 먹을 만한 지각조차 없어. 그 수프는 베시가 이 미친 집구석에서 누구에게나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프인데 말이지. ...... 네가 세상 밖으로 나가 온 세상을 다 뒤져 스승을, 그 예수기도문을 제대로 외우는 법을 말해줄 어떤 지도자, 어떤 성인을 찾았다고 한들 그게 네게 무슨 소용이겠냐? 코앞에 있는 축성받은 닭고기 수프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자격 있는 성인이 눈앞에 있다 한들 대체 어떻게 알아보겠느냐고!" 하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소중한 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거라고. 주이가 프래니에게 '뚱뚱한 부인'을 위해 이것저것 했는데, '뚱뚱한 부인'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며, 연기를 열심히하라고 얘기했을 때 나도 아차 싶었다. 내가 찾던 삶의 의미는 지금 내 일에서도, 내 주변 누군가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

 

 

 

꾸준히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묵직한 펀치를 날려줄 작품이다. 부조리한 현실, 허세에 찌든 인간상, 실망스러운 기성세대를 보며 청년들은 실망할 것이다. 이런 세상과 타협을 해야 할까, 아님 등을 돌려버릴까. 이런 세상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기성세대들이 물려준 부조리한 사회를 인정하고 이 속에서 그냥저냥 살아갈까. 고민이 많은 지금의 20대. 인간관계,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여기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버린 '칠포세대'에게 나를 지키는 방법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용기에 있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27살, 많은 걸 포기한 내게 이 작품은 터닝포인트를 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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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만화로 읽는 세계문학' 시리즈 같은 책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롯해서 『데미안』『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고전을 많이 읽었다. 머리가 크고 나서 다시 꺼내들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얼마나 놀랬는지. 초등학교 때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다양한 메시지들이 담긴 걸작 중에 걸작이었다. 『데미안』도, 『수레바퀴 아래서』도 진지한 작품이었다! 이런 걸 만화로 읽고 읽었다고 말하고 다녔다니... 얼굴이 붉어진다.



이번에 읽은 『프래니와 주이』는 사실, 처음 들어본 작품이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인 거 같았는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샐린저의 가장 유명한 책일지는 몰라도 『프래니와 주이』를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다'고 극찬을 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주제는 『호밀밭의 파수꾼』과 비슷하다.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내면에서 치고 올라오는 삶에 대한 의문과 제대로 살고 싶은 스무살 젊은이의 고민.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은근히 묻어나오는 샐린저식 유머까지. 왜 <가디언>이 극찬을 하는 작품인지 알 수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진지하고 깊다.



프래니와 주이는 글래스 가문 일곱 남매 중 여섯째와 막내다. 막내인 프래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한다. 자기 입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자기 머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연극을 전공하는 그녀는 갑자기 연극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에고이스트' 같다며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해댄다. 프래니의 남자친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데이트를 엉망으로 마친 다음날, 프래니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울고만 있다. 오빠인 주이는 그런 프래니가 걱정된다. 주이는 엄마인 글래스 부인과의 길고 긴 대화 끝에, 프래니에게 자신이 겪어왔던 삶이란 것을 이야기 해준다. 오빠 주이 역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연기자이기 때문에 프래니가 하는 고민들을 똑같이 해왔기 때문이다. 조금은 신랄하게, 하지만 걱정이 담뿍 담긴 조언을 해주고 프래니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자기가 자기일을 열심히 할 때 그 의미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남매는 각자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무사히 잠에 들 수 있게 된다.

 

 

"나는 경쟁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모르겠어? 난 내가 경쟁을 하려 할까봐 두려워. 그게 바로 내가 겁내는 거라고. 그래서 내가 연극 전공을 그만둔 거야. 내가 다른 모두의 가치를 받아들이도록 끔찍하게 길들여졌다고 해서, 내가 갈채를 보내고 나를 극찬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옳은 것이 되는 건 아니야. 난 그게 부끄러워. 신물이 나.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용기를 갖지 못한 것이 신물이 난다고. 화려한 평판 같은 것을 바라는 나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신물이 나.”


“너는 왜 그렇게 허물어져버린 건데? 그렇게 힘껏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면 왜 그 힘을 자신을 제대로 열심히 지탱하는 데 쓰지 못하는 거냐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일은, 연기야. 원한다면, 신을 위해 연기하고, 원한다면 신의 배우가 되어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게 또 있겠어? 원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해봐. 노력하는 건 괜찮잖아.”

 

 

 

 

엄마가 끓여주는 닭고기 수프



까칠한 여섯째와, 울고만 있는 일곱째를 둔 엄마 글래스 부인의 심정은 어떨까. 글래스 부인은 아들이 자기한테 제발 좀 나가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도 무시하고 걱정어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혀 있는 딸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그리고 끓여놓은 '닭고기 수프'를 먹으라며 끊임없이 권한다. 처음에 주이와 글래스 부인이 툭탁툭탁 대화를 할 때는 답답했었다. 아니, 왜 저 아줌마는 아들 목욕하는 욕실에 들어와서 저렇게 끝도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걸까, 수프 안 먹는다면 안 먹는 건데 왜 자꾸 권할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주이가 "너는 누군가 네게 축성한 닭고기 수프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을 때 그것을 먹을 만한 지각조차 없어. 그 수프는 베시가 이 미친 집구석에서 누구에게나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프인데 말이지. ...... 네가 세상 밖으로 나가 온 세상을 다 뒤져 스승을, 그 예수기도문을 제대로 외우는 법을 말해줄 어떤 지도자, 어떤 성인을 찾았다고 한들 그게 네게 무슨 소용이겠냐? 코앞에 있는 축성받은 닭고기 수프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자격 있는 성인이 눈앞에 있다 한들 대체 어떻게 알아보겠느냐고!" 하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나도 깨달았다. 소중한 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거라고. 주이가 프래니에게 '뚱뚱한 부인'을 위해 이것저것 했는데, '뚱뚱한 부인'이 아닌 사람은 없었다며, 연기를 열심히하라고 얘기했을 때 나도 아차 싶었다. 내가 찾던 삶의 의미는 지금 내 일에서도, 내 주변 누군가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

 

 

 

꾸준히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묵직한 펀치를 날려줄 작품이다. 부조리한 현실, 허세에 찌든 인간상, 실망스러운 기성세대를 보며 청년들은 실망할 것이다. 이런 세상과 타협을 해야 할까, 아님 등을 돌려버릴까. 이런 세상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그냥 기성세대들이 물려준 부조리한 사회를 인정하고 이 속에서 그냥저냥 살아갈까. 고민이 많은 지금의 20대. 인간관계,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여기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해버린 '칠포세대'에게 나를 지키는 방법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용기에 있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27살, 많은 걸 포기한 내게 이 작품은 터닝포인트를 제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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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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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온다는 기발하고도 위험한 설정. 미셸 우엘벡만의 위험한 상상력과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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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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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제일 많이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아마 <오만과 편견>일 것이다.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만도 수십 종으로 출판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다. 영국 작가, 하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제인 오스틴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조지 헨리 루이스는 제인 오스틴을 '소설을 쓰는 셰익스피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들의 문장을 비웃어버리고 자신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 말고도 <이성과 감성> <엠마> <맨스필드 파크> 등을 썼지만, 그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작품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 <설득>이다. 오스틴의 예전 작품들과 비슷하게 <설득>도 중류계급의 일상생활, 특히 남녀의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라는 협소한 소재와 주인공이 사는 마을이나 속해 있는 가문 정도의 배경만으로 당대의 영국 사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해냈다.

 

 

 

 

 

20대 후반의 앤. 당시에는 노처녀였다. 허세와 과소비가 심한 언니와 아버지 때문에 재산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빼어난 미모도 아닌 앤은 거의 결혼 포기 상태다. 재산이 거의 떨어지자 집을 내놓게 된 앤. 집을 사겠다고 한 부부는, 다름아닌 앤과 8년 전 혼담이 오갔던 남자 웬트워스 대령의 누나 부부였다. 그렇게 앤과 웬트워서 대령은 어색하게 재회하게 된다. 8년 전에는 해군이란 직업이 탐탁치 않게 여겨졌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도 아니고 거센 바닷바람과 힘든 뱃생활으로 외모가 많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의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인 레이디 러셀은 웬트워스 대령과의 혼인을 반대했고 천성이 여렸던 앤은 그렇게 웬트워스 대령과 헤어졌었다. 개암나무 열매처럼 단단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설득'당하고 그렇게 진정한 사랑과 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8년 후 지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금의환향한 웬트워스 대령과 꼼짝없이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미래가 없어서 헤어졌던 전남친이 8년 뒤, 잘나가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새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사실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어떻게 오해가 풀리는지 읽다보면 세밀한 문장들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고, 그러면 그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괜히 '지난 천 년간 최고의 작가' 2위가 아닐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앤은 다른 오스틴의 작품속 여주인공들처럼 매력적이지는 않다. 엠마처럼 상냥하고 발랄하지도 않고, 엘리자베스처럼 똑부러지고 당당한 편도 아니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어렸을 적 "어려서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강요받"아 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앤이 어떻게 8년 후에 감성적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택하게 된 것일까.

 

 

 

 

 

 

제인 오스틴이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서 얘기했던 것은 당대 시대 상황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년 전 영국에서 결혼은 가장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남자의 외모, 평판, 가문, 재산에다가 성격까지 고려해야 했으므로. 그중에서 제일 따졌던 것은 가문과 재산이었나보다. 로맨스에 시대배경에다가 비판의식까지 끼얹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당시에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도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0년 전 영국이나, 21세기 영국이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비슷해서 그렇지 않을까. 지금도 여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꿈꾸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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