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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자기 앞의 생』을 덮고 나자 문득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렇게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과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또 문득 누군가 아주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말할 것이다.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에 관해서. _조경란(소설가)
열네 살 소년 모모. 모모는 부모에게 버려지고 다른 고아들과 함께 로자 아주머니 집에서 지낸다. 모모는 외롭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엄마와 아빠가 없어서 외롭고,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것 같아서 외롭다. 모모는 사랑이 고픈 나머지 시장에서 소매치기를 한다. 그리고 일부러 들킨다. 뺨을 내주고 한 대 얻어맞는다. 그렇게 소리를 빽빽 지르고 울면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모모는 이렇게 늘 사랑을 갈구한다. 모모에게는 사랑을 쏟을 수 있는 친구 쉬페르라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모모는 자기와는 다른 환경에서 살게 해주려고, 자기 곁에 있어봤자 행복하게 살 수 없다는 판단에 부잣집에 강아지를 팔아버린다. 그리고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다른 친구 아르튀르를 만들어낸다! 옷도 입고 있고, 얼굴도 그려넣은 우산이긴 하지만.
모모를 돌봐주는 로자 아주머니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가고 천천히 죽어간다. 그동안 모모를 돌봐주던 아주머니는 이제 모모의 돌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거의 부모와 자식같이 살아온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는 결국 이별하고 말지만 모모는 그렇게 생이란 것을 깨닫는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수없이 울컥했다. 모모다 쉬페르를 남에게 팔아버리고 그 돈을 하수구에 던져버릴 때, 로자 아줌마가 때때로 정신을 놓을 때, 로자 아주머니가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했을 때.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갗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사랑해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놀라웠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대학교 2학년, 시험기간이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도서관의 책장을 찬찬히 둘러보는 중에 눈에 띄었다. 그땐 이 작품이 너무나 사랑스럽기만 했다. 모모의 매력에 빠졌고, 순진무구한 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비열함에 놀랐다. 또 그때는 사랑이라고 하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 전부였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말하는 사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세 번째 읽는 지금,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 전보다는 폭넓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더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이 작품을 읽고 나니까 왜 이 작품이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는지 알 것 같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 그게 남녀간의 사랑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자.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생은 얼마나 불행할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내게 이 책은 다시 한번 잘 살아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으니 살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