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황무지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그가 서 있었다. 그가 왔을 때에는 늪은 무릎까지 빠지고 여기저기 히스가 무성했다. 그는 햇빛이 잘 드는 비탈을 찾아 정착했다.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이들은 경작되지 않은 공유지를 가로질러 오솔길이 생기게 했고, 사람이 늘어나면서 오솔길이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이사크는 만족스러웠고 뒤를 돌아보면 뿌듯할 것 같았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도록 이끈 게 그였고, 이제 그는 영주와도 같았다. _425쪽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 1917년에 <땅의 혜택>을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작가 치고는 유명하지 않은 축에 속한다. 노르웨이 문학이 낯선데다가 작가 이름까지 낯설었다. 크누트 함순. 단번에 입에 붙지도 않는 이름이다. 덕분에 편견 없이 이 작품을 접했다.


마을에 나가는 데 하루가 걸리는 외딴 황야에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뒤이어 한 여자도 등장한다. 그들은 아이를 여럿 낳았고 땅을 일구었고 가축을 돌보았다. 아이들은 자랐고 땅은 비옥해졌고 가축은 나날이 살이 올랐다. 빛도 한줄기 안 들어왔던 집에 창을 내었고, 방을 한 칸 한 칸 더 늘였다. 이렇게 평화롭게 하루하루가 지난다. 1부, 2부로 나뉜 이 작품은 내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찬양한다. 자연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 큰 세상을 향해 도시로 나가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한다. 또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황야로 들어왔던 외지인들도 실패만 한다. 땀을 흘리며 땅을 스스로 일군 자들에게만 대자연은 품을 내준다.


소설 작품에는 큰 위기가 한 번씩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이렇다 할 큰 위기가 없다. 단지 '영아 살해'라는 모티프가 꾸준히 등장할 뿐이다. 1920년대 초에 노르웨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도시로 나가기 위해 영아 살해를 빈번히 저질렀다고 한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까지 등장하며 2015년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던져준다. 영아 살해를 저지르는 부인들이 등장하지만,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 빈번했다는 해설을 읽어보니 이 작품은 그저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가축에게 사료를 먹이고, 밭에 물을 대고, 집을 한 칸 늘이고, 옷을 만드는 모습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딱히 큰 위기 없이 작품 초반부터 끝까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는 지 보여준다. 주변 인물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준다. 도시로 나갔지만,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 자연에서 부를 축적하려고 모인 기회주의자들, 자연에서 틈틈이 도시로 나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 아마 도시에서 환멸을 느끼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 작가, 크누트 함순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을 것이다.


이제 둘은 새 집으로 옮겨갔고, 오두막은 가축들 차지가 되었다. 암소에게는 새끼 양이 딸린 어미 양을 친구 삼아 넣어주었다.

황야에 사는 이 사람들은 이만큼을 이룬 것이다. 무슨 기적 같았다. _27쪽

매일매일의 삶, 이 농장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 사건들. 아, 별일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것들이 이들의 행복, 편안함, 풍요로움을 결정했다. _69쪽

 <땅의 혜택>이라는 제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영어로는 대자연을 Mother Nature이라고 하는데, 바로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닮아서 그런 것이리라. 대가 없이 자녀를 사랑하고 일용한 양식을 주고, 때로는 엄하게 혼을 내기도 하지만 그건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인 어머니처럼 땅은 우리에게 식의주를 모두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주며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해준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소중함과 그 위대한 생명력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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