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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에게 문자가 발명되면서, 그림과 더불어 활자를 이용한 문학예술의 시작은 인간이 삶을 영위 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영적인 고뇌들을 관찰하고 구원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현실적 고찰들은 영적인 다른영역들과의 수없이 반복되는 상관관계를 풀이하고 정답은 아니더라고 올바른 정의를 구현하려 했다. 이성과 감성을 수단으로 그 의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자연과 더불어 삶에서 엮여지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결탁하여 의의를 해석하려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끊임없이 고뇌하고 정의를 모색하면서 인생과 삶에 대해서 연구하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일어났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을 글로써 표현한 '문학'이 자리잡고 있었다.









 '문학'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뇌의 흔적들이 그 아름다움을 등에 엎고 본질적인 고뇌를 다뤄내는 하나의 작품이라면 역사상 최고의 작가들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뽑고싶다. 당대 톨스토이등 형언할 수 없는 예술문학가들도 물론 대단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미학적인 탁월함으로 인생과 종교, 개인의 욕망과 위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1821년에 태어나 1881년까지 살아간 도스토예프스키의 파란만장한 작품들 속에서 단연 (개인적으로)최고로 일컬어지는 작품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면 그가 당시 시대적 혼돈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자세와 그에따른 종교적인 고뇌들을 얼마나 미학적인 문체로 다루어냈는지 알 수 있다. 표도르파블로비치와 그 세 자식들간의 각기 다른 성격들로 빛어지는 이성의 한계와 의식하지 못한채 자의식을 체념하듯 뒤틀리는 위선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각기 다른 챕터들을 통해 써내려갔다. 그리고 눈앞에서 부딛치는 사건들은 그 의의를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고개를 돌리게끔 만든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생각하는 종교관을 현실적 통념들과의 끝없는 충돌로써 더 삶의 본질, 곧 핵심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발견한다. 피상적인 사건들과 개인이 가지고 있는 통념들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위선과 나약함의 한계들을 자생적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초기작 <지하 생활자로부터의 수기>에서는 인물의 독백을 통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사회적 식견을 가감없이 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격동의 시대적변화에 따라 인물이 가지게 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히 염세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되, 그 한계가 발아하게된 계기를 사회와 종교적인 문제로 질문을 뒤틈으로써 새로운 공론을 만들고 있다. 사회 지식인으로써 가지게 되는 왜곡된 통념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학적인 단상들을 거의 자학하듯 독백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문학적인 탁견과 미학, 인간의 심리 본성을 관찰하는 자세, 더불어 예술적인 감각들을 동시에 구현하는 능력들은 그가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세계적인 작가임을 충분히 증명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죄와 벌>을 통해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느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을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정의를 일방적인 해답없이 고민할 수 있는 식견을 만들어 준다. 그와 함께 위선없이 순수한 인물이 다른 속물적인 통념을 가진 인물들과 가지게 되는 갈등을 통해 '개인이 애정하는 것에 대한 인격적 한계'를 들어내는 <백치>. 나약한 이념과 구원을 바라는 감정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증오가 발아하게 만드는 모순적인 현실을 드러낸 <미성년>등 도스토예프스키가 적어내려간 방대한 고찰의 기록들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어쩌면 살면서 겪게되는 수없이 다양한, 하지만 더할나위없이 중요한 심적 고뇌들을 한번씩은 모두 부딛치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방탕한 도박생활과 매번 생활고에 찌들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에 대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가 러시아 문학에 남긴, 더 나아가 인류 문학예술에 기여한 긍정적인 역할은 결코 그 뒷 배경들이 그 가치를 훼손할 수도, 폄하 할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다재한 굴곡 속에서 직접 체험하게된 삶의 고난들이 인간의 내적 심리를 이토록 내밀하게, 그러면서도 문학예술로써의 미학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책의 두께만큼, 한장한장에 깃든 삶에 대한 진중한 시선들만큼 책장에 꽃힌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든든해 진다.-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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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참 애매모호 한게 많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방송되는 뉴스들을 봐도 그렇다. 본질적인 내막과 배경을 알지 못한채 내뱉는 정보들을 '어느정도 사태의 심각성'만을 각인한채 망각해 버리는 것 처럼 말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테러들이, 생각해보니 내가 구내식당에서 점심밥을 먹고 있을때 일어났다는 짤막한 뉴스나, 이후 후식으로 커피숍에 가는 길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이 일어난 일들과 같은 것들이 말이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서 매일 새로운 정보들을 폭풍처럼 수용하게 된다. 하지만 모호하다. 내용은 신속성을 중요시 하는 뉴스의 간결함과 작은 모바일 액정에 걸맞는 프레임에 담겨 좁혀지고, 중요성은 축소되며, 심지어 간혹 왜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대중들은 모호한 실루엣 속에서, 정보의 실질적인 형태와 왜곡되지 않은 사건들의 배경을 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본질을 향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이 글을 타이핑 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이 순간을 사소하지만 하나의 사건이라 기록하면, 객관적인 상황이 벌어짐과 동시에 다른 관점들의 셀 수도 없는 주관들이 개입하게 된다. 애초에 객관이라는 본질은 손질되고 일어나게 된 계기, 진행되는 과정, 발하게 된 결과, 그로써 이 사건이 남긴 의의들 까지 전부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평가 될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밀첩하게 안고살게 되는 극단의 주관인 '시간'이 개입하면서, 개개인 모두의 탄생은 주관의 탄생이며, 생生은 주관의 과정이 된다. 이 주관들 속에서 한 시대(역사)의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이라는 피상적인 모호한 접근보다는 '보다 다양한 주관을 수용한' 역사서로 이 멈추지 않는 역사서를 접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권이 바뀌면서 국가의 다양한 정당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이념으로 박치기 할때 가장 예민하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 바로 교과서이다. 어린 아이들이 처음으로 역사를 인식하게 되는 시발점. 어떤 사안에 대하여 무의식 적으로(의식적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지게 된 극단적인 이미지, 예컨데 부정적인 이미지와 배경을 가지게 되었다고 치자. 그 이미지를 깨고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뒤엎는 다른 방식의 이미지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작용을 하거나, 혹은 자의적으로 다른 작용들에 대한 탐색 노력을 시행 할 직접적인 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처음 접하게 되는 것들이 인생에서 이미지로 각인되어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잠시만 돌아보아도, 분명한 논리와 지식을 뒷받침 하지 못한채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이미지 들이 얼마나 많은가. 때문에 같은 공간을 다른 이념을 가지고 해석하는 세력들 간의 논쟁은 여전하고, 일본의 역사왜곡, 수없이 많은 과거사 논란들은 여전히 미디어에서 끊이지 않고 공론되는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하지만 정보는 수없이 마구 쏟아지는데 비해, 현 세대는 제대로 역사(본질과 배경)을 습득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다. 수없이 마구 쏟아져 안구속으로 들여보내지는 것이다. 깔때기는 부족한데 물만 자꾸 쏟아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는 깔대기를 넓히자는 수용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안에 이미 산처럼 쌓여있는 정보의 더미들을 가장 밑바닥 부터 긁어내 제대로 뒤집어 바라보는 것. 모호한 것들을 열린 주관으로부터 바라보는 것.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념들을 수용하면서, 혹여나 나도 모르게 딱지처럼 들러붙은 이미지들을 관철하는 행위가 바로 제대로된 역사 인식이 아닌가 싶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단편적인 정보의 산들을 수평으로 잘라내어, 그 역사가 의의하는 본질부터 보려는 그 마음가짐. 바로 거기서 부터 '지식인'은 탄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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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기만 했을 뿐 읽은 책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많이 틀리고, 부족하겠지만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기존에 읽었던, 그리고 최근에 구매해서 읽게된 소설과 인문관련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약간의 공감이라도 있었다면 추천 하나 부탁드릴께요^ㅡ^.  -ozwon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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