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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낭떠러지 끝에 간신히 걸쳐 있는 빨간 지붕의 집,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한 가족.
표지부터, 아슬아슬함이 보인다.
그들은 집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집 안에 들어간다 한들, 안전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열 두살 차이가 나는 띠동갑 남동생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이 태어났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의 내가 기특할 정도로 (ㅎㅎ)온 마음을 다해 굉장히 아껴주었다. 직장생활 하느라 피곤한 엄마를 대신해서. 새벽이면 울어대는 동생을 위해 분유를 타고, 졸면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곤 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셨을 때면 내가 마치 엄마라도 된 양,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 주고 내일 학교 갈 준비물을 챙겨주었다. 한창 놀고 싶었던 대학 시절이었고, 가끔은 동생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나기도 했었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나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 아니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일지 미리부터 배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동생 사랑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됐다.
내 용돈 벌기도 힘들었지만 맛있는 게 보이면 동생에게 사다주었고, 옷이나 신발도 좋은 게 있으면 내 용돈을 모아서라도 사다줘야 직성이 풀렸다. 둘이서 시내로 영화를 보러 나가기도 하고, 날씨가 좋을 때면 청계천으로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 시청의 루미나리에 구경... 참 이것 저것 많이도 했었다.
그런데 이 어린 놈이, (내가 보기엔 분명 어린데. 지금도 그렇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더니 조금씩 나랑 같이 다니는 걸 싫어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거 사준다고 꾀고 재밌는 영화 보여준다고 꾀고 신기한 곳 데려가 준다고 꾀도, 이 놈의 자식이 친구들이랑 야구 해야 한다, 축구 해야 한다, 생일 잔치 가야 한간다, 등등의 빡빡한. 스케쥴을 대면서 나를 슬슬. 피하곤 했다.
허 . 참. 자식들이라는 게 이렇구나. 싶었다.
이래서 자식 낳아 봐야 소용없다, 고들 말씀하시는 구나.
내 쓸 거 아껴서라도 뭐든 다 퍼주고 싶었는데, 결국은 쟤도 자기가 좋은 거 찾아 가는구나.
그렇게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도, 나로 인해 언젠가 이런 마음이 드신 적이 있으셨겠지.
죄송스럽기도 했고, 더 잘 해드려야 겠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벌써 꽤 오래전이다.
그 이후부터 (물론 난 아직 결혼도 안하고 아기도 안 낳아봤지만) 자녀교육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고, 책과 기사, 전문가 칼럼 등 교육과 심리서 등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실제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다른 집 부모님들은 자녀들과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자녀와 충돌이 생겼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했다.
동생의 사춘기 시절은 참 길고도 파란 만장했다.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ㅠㅠ)
부모님께 반항하고, 친구들과 다투고 오고, 학교며 학원에서 선생님들께 집으로 전화가 오고...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은 사춘기 시절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말로 무마시키기엔 늦둥이를 보신 탓에 연세도 있으신 부모님이 겪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위로 딸만 둘이 키워 자식 키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셨던(아닌가?^^;;) 그리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동생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 걱정마. 남들도 다 그래', 혹은 '그럴 땐 이렇게 해봐', 라고 어줍잖은 위로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자신있게 엄마에게 건네 줄 책이 없었다.
아, 그 책들이 별로. 였다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거나 상처받을까봐, 혹은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절망할까봐... 쉬 읽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부모>는 여느 자녀 교육서, 부모교육서, 심리서. 들과는 달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두 가지다.
우선 이 책에서 보여주는 초, 중, 고 학생들의 상담 사례, 부모님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 어떤 고민이 있고 자녀와 어떤 문제로 부딪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자녀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우리 집만 이런 일이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약간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이 책은 '이럴 땐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해주는 해결서, 혹은 상황별 지침서가 아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내 아이가 비뚤어진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탓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며 그렇게 생각하는 게 결코 내 마음이 편하자고 합리화시키는 행위가 아니라는, 믿음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다. 자녀로 인해 힘들었던 그 시간들, 아이 성적이 좋지 않은 게 마치 내 탓인 거 같아 나를 자책했던 시간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어머님들이 있다면 분명,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겠구나, 하는 결심, 비록 이 책에 '정답'이 나와있지는 않지만, 나에게 맞는 해답을.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사례들, 부모와의 갈등을 겪는 아이들이 마치 , 혼자만 간직하려고 쓴 비밀 일기장 같은 그 사례들을 많은 부모님들이읽고, 공감하고, 이것이 비단 이 아이의 문제, 그 엄마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알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이도, 지금. 이렇게 힘들어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