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설을 읽다 보면 국내작이고 해외작이고
할 거 없이 '내가 이걸 지금 왜 읽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 많지
않다. 끝까지 다 읽는 책이
적으니 당연히 좋은 소설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내 문학적 소견이 부족해서이기도 할 거고, 나이를 먹을수록 절대적, 상대적 시간이 부족해져서 이기도 할 거고, 편견이나 꼬인 생각은 늘어나고 유연함은 줄어들어서
이기도 할 거다. 여러모로
슬픈 일이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뭐였더라.
다 읽고 나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거 읽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
추천해 주고 싶은 누군가가
떠오르거나 한 줄이라도 오래도록,
혹은 평생 잊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문장이 있는 책.
주인공에게 자꾸 빠져드는 책. 그 사람의 상황에
이입되는 책.
또 뭐가 있을까.
내게 좋은 소설이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
그런데 얼마 전에 읽은
<비바,
제인>에서 내게 좋은 소설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됐다.
소설 속에 잠시 등장하는 어떤
인물의 삶이 궁금해지는 책.
그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고 싶어지는
책.
<비바 제인>의 줄거리나 특징은 신간 홍보로 여기 저기서 알려질 테니 그런 건 접어두고,(아,
그래도 혹시 몰라 말한다면,
책은 당연히 재밌다.
내가 거의 한번에 읽은 책이니까. 아기 엄마가 한 권의 책을 '한번에'
거의 다 읽는 일은 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나름 확실한
보증수표다.*_*)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에 정말
정말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
처음과 마지막에 강렬(?)하게 등장하는 그 사람은 바로 주인공 아비바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아비바의
할머니다.
에르메스 스카프에 샤넬 퀼팅백을 메고,
'무언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야.' 라고 말하는 여자. 슬랙스에 가느다란 허리띠를 하고 통굽 플랫슈즈를 신은, 샤넬 No.5 향을 풍기는 세련된
할머니. 어떤 물건이든 일단
선택한 다음에는 신경써서 잘 관리하는 사람.
정치인과의 스캔들에
휘말려 결국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집을 떠나는 손녀 아비바에게 2만 달러 수표를 조용히 건네며
'그놈은 좋지 못한 놈이었어.'라고 말해주는, 그런 속 깊은 사람.
그 사람이 좀 더 젊어 누군가의 엄마였던
시절엔 어땠나.
얼마나 멋진 엄마였던가.
결혼식을 곧 앞둔 딸에게,
차안에서 문득,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던 사람.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드는 거냐고 반문하는 딸에게, '그게, 그러니까 엄마 말은, 그 사람하고 결혼해도 되지만 안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 사람은
좋아. 괜찮아. 다만
곰곰 생각하다보니까, 결혼식을
취소하는 것도 강행하는 것만큼이나 별 거 아니라는 걸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었어.' 라고 말해주는 그런 멋진 사람.
딱히 반대할 이유 없는 중간 이상의 결혼식을 앞둔 딸에게 저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멋진 여자인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일이다.
-
아무튼, 몇 번 등장하지도 않은 인물인데도 나는 아비바의 할머니에게 아주 깊이 빠져버렸다. 다 읽고 나서, 주인공 아비바도 그렇지만, 아비바 할머니가 젊었을 때의 삶, 이야기가 끝나고 난 후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됐다.
내가 이렇게 잠시
등장하는 인물을 궁금해한 적이 있었나?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까 <비바 제인>은,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