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윤서인 지음, 티라노 그림 / 자유민주아카데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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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와 번영의 기초를 놓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웹툰 만화책이 나왔어요.



글은 자유와 시장경제 전도사, 웹툰작가 윤서인 작가가 썼고,

그림은 티라노 만화작가가 그렸네요.



만화의 시작은 역사 선생님과 중학생 성필이의 대화로부터 시작해요.

( * 본 서평에 실린 대화는 내용은 유지하고 문장을 축약한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 : (자료를 읽으며)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으며, 자유민주주의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

성필 : 흐아아....(하품)

선생님 : 자유민주주의를 논하는데 지금 잠이 옴?

성필 : 너무 지루해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참정권! 헌법! 이런 것들 대한민국 초딩 이상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이승만은 나쁜 사람 아닌가요? 친일! 부정선거! 독재자!

과연 성필이의 생각이 맞을까요?

이 책을 통해 진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역사 선생님과 한강에 나온 성필이



한강대교를 함께 건너다 역사선생님이 화두를 던져요.

선생님 : 너 혹시 이 다리가 한 때 폭파됐었던 건 알고 있니?

성필 : 아, 알아요. 이승만이 6.25때 이 다리를 폭파했잖아요. 북한군이 쳐들어오는 속도를 늦춘다면서 갑자기 이 다리를 폭파하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던 국민 800명이 사망한 사건. 자기는 한밤 중에 미리 후방으로 도망가고. 국민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간 비겁한 대통령. 런승만!

이에 대한 역사 선생님의 대답은 뭘까요?




| 역사선생님과 대학로 근처 이화장에 간 성필이



선생님 : 이 집은 미국에서 돌아온 후 거처가 마땅치 않았던 이승만에게 수 십명의 지지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마련해준 집이야. 내가 널 여기 데려온 이유는 여기가 단순히 이승만이 살았던 곳이라서가 아니라 여기가 바로 나라를 만든 곳이기 때문이야.

| 독립운동

선생님 : 백년 전 일제 시대때 우리가 독립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게 무엇이었을까?

성필 : 으음 일제보다 강력한 힘? 일본군을 물리칠 전투력?

선생님 : 우리나라에 광복군이 유지되었다면 그 많은 인원의 군대와 무기들이 주둔할 곳은? 유지할 돈은?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 중국와 1:1 맞짱을 떠서 이길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어. 이승만은 처음부터 무장투쟁의 한계와 흐름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임시정부 인사들이 추구하는 무장투쟁 중심 독립운동의 한계를 깨닫고 갈등 끝에 임정과 결별, 홀로 미국에서 외교중심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19년 이승만은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라는 대미 외교조직을 개설하고 프린스턴대 은사였던 우드로 윌슨대통령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요청했다. 이어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를 앞두고 하딩 미국대통령에게 대한민국 독립청원서를 보냈으나 이 역시 무시당했다. 당시 미국의 입장은 이랬다.

미국 : 요즘 기껏 일본이랑 잘 지내면서 태평양 안정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 시점에서 굳이 왜 그런 짓을?

이승만 : 아 지금이야 일본이 얌전하지만 머지않아 곧 본색을 드러낸다고!

미국 : 어이어이 이간질 하지말고 가세요.

선생님: 실제로 10년이 흐른 1931년 일본은 만주를 전격 침공, 1차대전 이후 일본의 세력 확장을 경계해오던 미국을 깜짝 놀라게 한다. 미국은 부랴부랴 일본의 만주침공을 강력히 비난한다. 1932년 드디어 미국은 그간 거절했던 이승만의 여권발급을 허가해주어 제네바로 날아간 이승만은 국제외교를 진행한다.

|건국

선생님 : 미국은 새로 창설되는 UN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소련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봤어. 그래서 한반도에 소련을 끌어들여 공동으로 신탁통치를 하려했고, 이승만, 김구 등 우익인사들은 이를 격렬히 반대했지.

이승만은 소련의 한반도 병합의지를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소공동위원회가 난항을 겪는 사이 이승만은 정읍에서 아래와 같은 연설을 한다.

이승만 : 하나된 통일정부를 고대했지만 상황이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 남쪽만이라도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고 소련이 철퇴되도록 국제사회에 호소해야 할 것 입니다.

선생님 : 이러던 와중에 이승만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든다. 트루먼 대통령이 1947년 3월, 소련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이제부터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나라들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해버린 것.

성필 : 트루먼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되게 싫어했나 보네요.

선생님 :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의 은인이지.

| 농지개혁


한반도는 조선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동안 철저하게 '지주제'를 운영했다고 해요. 지주는 양반을 중심으로 한 땅의 주인이고 소작농은 지주에게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바치는 사실상의 노예들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을 관통했던 사농공상 구조(선비가 제일 - 농민 - 공인 - 상인 - 노비)와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 뒤엔 양반들이 착취하기 좋은 농사를 추켜세우는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이승만은 이 지겨운 구도를 깨고 현대국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지주제를 폐기하고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제헌헌법에서 농지개혁을 명시합니다.

1946년 7월 이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바로 농지개혁이 본격 실행되어 대한민국 모든 지주들의 농지 소유 상한선을 3헥타르로 제한하고 이를 넘는 농지는 모두 나라에서 유상으로 가져간 후 전국의 소작농들에게 모두 유상으로 나눠줍니다. 당장 돈이 없는 소작농에게는 앞으로 생산되는 생산물로 차근차근 갚도록 했어요. 이로써 단 3년 만에 전 농지의 95.7%를 자작농이 소유하게 된 세계적인 토지개혁 성공사례라고 합니다. (p.164~165)





역사선생님과의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기 전,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 부정선거자로 이야기한 성필이.

성필이는 역사선생님과 함께 하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여러분도 201페이지의 역사 여행을 떠나면서 슈퍼 히어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보기를 소망합니다.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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