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뭔가 짖궂은, 또는 비위에 거슬리는 뭔가를 하고 있을 때, 여러분은 쓱 돌아보면서 이렇게 물어볼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내가 미친 걸까?’ 그러면 상대방은 이렇게 말해주는 거죠. ‘맞아, 그러니까 하던 일이나 계속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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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은 보통 비슷한 것들을 서로 짝맞추기 한다. 이는 원초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이는 마치 아이들의 메모리 게임과도 비슷하다. 즉 한 장의ㅍ카드를 뒤집어서 수박이 나오면, 갑자기 어떤 욕구가 떠오르는데, 즉 또 한 장의 수박 카드를 찾는 일이야말로 마치 호흡처럼 자연스럽고도 다급한 일처럼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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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위대한 2인조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서로 매우 다른 동시에 서로 매우 비슷할 것이다. 이런 동시적인 극단은 깊은 친밀감과 활기찬 마찰을 빚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창조적인 한 쌍을 규정하는 요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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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알아내는 것.



세상 모든 곡은 생명 있는 것들의 호흡과 맥박과 심장박동을 재해석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가장 위험한 순간에서부터 가장 안락한 순간까지를. 그래서 음악을 듣는 일은 다른 숨을 쉬게 되는 경험이 아닐까.

똑같은 꽃이 계속해서 지고 계속해서 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제라늄 옆에서 제라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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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이민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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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성과 남성의 기본값에 ‘생김새가 각기 다름’이라는 수평적 차이가 아닌 ‘필요한 노동이 있고 없음’이라는 수직적 격차가 존재함을 깨닫고 나면 문제의식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치장에 들이는 수고를 최소화했을때의 외형이 남성형으로 상정되어 있다는 것, 즉 사람의 기본값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탈코르셋 운동은 보편 인간이 남성으로 상정되어 있다는 페미니즘의 오랜 문제 제기를 외양에 집중적으로 적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운동이 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기본값이라는 뜻의 ‘디폴트default‘라고 부르는 데에는 여성이 의무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꼴을 남성과 마찬가지로 추가 노동이 굳이 필요 없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담겨 있다.

개인이 사회로부터 언제 자신에게 부여되었는지도 모르는 의무를 수행해 다시금 이 값을 공고히 하는 만큼 사회적으로 설정된 기본값은 사회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 시작은 꾸밈의 중지이다. 일상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꾸밈의 중지가 사회운동이되는 까닭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 여성의 얼굴에 매겨진 기본값이 높기 때문에 이 기본값에 맞추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하는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즉, 기본값을 맞추지 않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역시 기본값만큼이나 무척 높다.

선택의 자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탈코르셋 운동이 꾸밀 자유를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꾸미지 않는 여성은 분명 개인이 가진 선택권이라는 권리를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다. 꾸미지 않기를 선택할 자유와 그것을 선택했을 때 주어지는 자유 사이의 간극은 선택지를 발견하고 활용하는 개인의 재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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