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너머 인생그림책 32
오소리 지음 / 길벗어린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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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믿음을 품은 이들은 자신이 무엇이든 분명하게 알 수 있기를, 언제든 확실하게 선택할 수 있기를, 어디서든 흔들림 없이 행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가끔 (아니, 사실은 자주) 타인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달하고 싶은 (아니, 사실은 강요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아가기도 하죠. 그럴 때 자신과 다른 앎을 가진, 자신과 다른 선택을 내리는,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이들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곤 합니다. 각자의 다름 안에 있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서, 각자의 다름이 가진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아서, 각자의 다름은 서로의 틀림이 되어버립니다.


분홍색 고깔 모자를 쓴 ‘고깔 곰’. 연두색 투구를 쓴 ‘투구 곰’. 그리고 그 둘과 한 숲에서 살아가는 꼬마 곰의 이야기 시선 너머는 자신의 믿음 안에 갇힌 이들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시선 바깥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이들을 들려줍니다. 


🔖“두 곰이 물러서지 않는 동안 불길은 계속 이어지고 숲은 사라져 갔습니다.”


고깔 곰과 투구 곰은 서로 다른 믿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마음을 짓고 살아갑니다. 서로의 다른 믿음을 부정합니다. 서로의 다른 마음을 힐난합니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서로 다른 진실을 품은 고깔 곰과 투구 곰의 싸움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모두의 숲은 활활 타오르고 맙니다. 그때, 고깔 곰과 투구 곰은 꼬마 곰에게 묻습니다. 꼬마 곰, 나를 믿어야 해! 아니야, 나를 믿어야 해! 평화는 너의 선택에 달렸어!


그러나 꼬마 곰은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지 않습니다. 둘의 사이를 넘어서, 둘의 시선 너머로 나아가는 선택을 내립니다. 너와 네가 믿는 진실에서 거리를 두고서, 너와 네가 믿는 진실 간의 거리를 좁혀갑니다. 온통 불타버린 숲의 끝에 선 작은 곰은 작은 몸으로 더 커다란 세상을 마주합니다.


꼬마 곰이 있는 (표지의 그림 참고)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줄기는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고깔 곰과 투구 곰을 가르는 기준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쪽과 저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도 있는 새로운 길의 흐름처럼 느껴지는데요. 꼬마 곰이 쓰고 있는 모자의 모양을 확인하며, 색도 색도 아닌 다른 색의 길로 나아가는 꼬마 곰의 걸음을 바라보며, 저는 느낌을 조금 믿어보게 되었습니다.




꼬마 곰은 고깔 곰과 투구 곰에게 ‘언젠가 다시 만나면 들려줄 이야기’를 약속하며 길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은 누구도 틀렸다 쉽게 단정하지 않는 이야기일 거예요. 사실 꼬마 곰은 모두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는, 모두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선택’을 매번 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 바깥에서 이야기를 만난 독자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 속의 고깔 곰과 투구 곰도 너무 늦지 않은 때에 꼬마 곰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소리 작가님의 전작 노를 신부, 엉엉엉, 개씨와 말씨 등을 만나오며 제가 작가님의 작품 키워드로 삼았던 단어는 바로가능성이었어요. 다를 가능성, 달라질 가능성, 다다를 가능성. 작품마다 작가님이 설정한 상황과 주제, 작가님이 그려낸 분위기와 그림체는 모두 다르지만 언제나너머 넘어서는 가능성을 그리고 말했던 작가님. 신작 #시선너머 반으로 갈라진 (어쩌면 언제까지나 반으로 갈라지길 바라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로 보내는 작가님의 여전한 믿음이자 온전한 마음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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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 경주 만만한국어 2
곽미영 지음, 지은 그림 / 만만한책방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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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받침 구조대⟫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이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책 소개 글만 봐도 ‘아, 이 책은 딱 우리 집 일곱 살이 좋아할 책이야!!!‘ 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한동안 ⟪받침 구조대⟫에 폭 빠져 지냈어요.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책의 이야기를 몽땅 다 외울 정도로  ⟪받침 구조대⟫에게 온 마음을 쏟아부었던 아이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까지 열심을 다해 전도하기도 했는데요. 홑받침, 쌍받침, 겹받침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로 쉽게 익힐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어른이 봐도 모든 에피소드가 재밌다는 점에서 이 그림책은 나이 불문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어요. 지난 2월 말, ⟪받침 구조대⟫의 후속작 ⟪띄어쓰기 경주⟫의 출간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아이가 자리에서 방방 뛰고 소리 지른 것은 네, 당연한 반응이었죠. 눈 빠지게 '만만한 국어'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온 아이를 위해 온라인 서점에서 바로 ⟪띄어쓰기 경주⟫를 주문했습니다. 이제 줄글을 읽고 쓰는 실력이 점점 늘고 있는 아이로 하여금 띄어쓰기와 띄어읽기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고도 재밌게 이해할 수 있게 도울 거란 기대와 확신이 양육자인 저에게도 몽글몽글 피어올랐거든요. ⟪띄어쓰기 경주⟫ 책을 배송 받은 날. 아이는 종일 틈날 때마다 이 책을 보았어요. 밥 먹기 전에도, 밥 먹고 나서도, 씻기 전에도, 씻고 나서도… 심지어 병원에 갈 때도 품 안에 소중히 챙겨 들고 갔답니다. 소리 내어 읽기도, 소리 없이 읽기도 하면서 하루의 시간을 이 책과 함께 다 보낸 아이. 여덟 살 어린이는새로운 1학년 교실에서 만날 새 친구들과 이 책을 빨리 같이 읽고 싶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 하고 있어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띄어쓰기 경주⟫는 전작  ⟪받침 구조대⟫의 명쾌한 유쾌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동시에 어떻게 띄어 읽고 띄어 써야 하는지 어른도 헷갈리기 쉬운 다양한 사례의 문장들을 긴 이야기 곳곳에 자연스레 녹여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다름 속에서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 배울 수 있는 면면을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는 조명으로 비추어낸 이야기이기도 한 ⟪띄어쓰기 경주⟫는 그림책으로서의 서사성도 힘주어 붙잡고 있어요. 자신에게 큰 웃음과 배움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 ⟪띄어쓰기 경주⟫ (와 ⟪받침 구조대⟫)를 자신처럼 ‘소나 무를 돌 보세요‘ 인지, ’소나무를 돌보세요‘인지 헷갈려 하는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같이 보고 싶다는 우리 집 초딩🎓! 그 어린이의 진심을 이 글에 옮겨와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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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해 주는 멋진 말 스콜라 창작 그림책 74
수전 베르데 지음, 피터 H. 레이놀즈 그림, 김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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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딛는 내 모든 걸음이 실패와 불가능으로만 향하는 기분이 들 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노력이 그저 보잘것없게만 느껴질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는 내 안팎의 가능성에 고개만 내젓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던, 저렇게 행동하지 못 했던 자신이 후회되고 원망스러울 때. 내가 나를 믿지도,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못 하는 마음이 되려 내 안의 나를 본래의 나보다 비대하게 만들 때. 나 자신과 내 옆의 당신, 함께 하는 우리 모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 하고 있을 때. 내가 내 모든 사이의 온도와 밀도를 망쳐버리는 사람인 것만 같을 때.


“난 이상해”, “난 문제야”, “그러면 안 돼”, “또 실패야”, “난 못 할 거야”, “난 왜 이럴까”, “다 나 때문이야”… 


바깥의 계절과 날씨와는 상관 없이 내 몸과 마음이 한없이 움츠러드는 모든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런 말 안에 쉽게 가두곤 합니다. 나를 낮추고 작아지게 만드는 말들이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정의하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런 말 속에 자주 내버려두곤 합니다.


하루 한 번,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고서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는 일. 애써 그 의도를 생각하고 그 의지를 불러오지 않으면 실천하기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말 한 마디 건네는 일도 마찬가지죠. 못난 나를 향해 모난 말을 던지는 밤은 왜 이리 자주 잦은지요. 지친 몸보다 처진 마음이 더 힘든 밤. 오고야 말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지는 밤. 스스로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들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바깥보다 더 춥고 어두워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밤을 ‘멋진 말’로 채우고 비춰줄 그림책, 나에게 해 주는 멋진 말을 만나 조금은 다행인 겨울입니다. 사실 이건, 지난 몇 주를 지난하게 지나온 제 진심입니다.

 

이 그림책의 원제는 Who I am 입니다. 수전 베르데 작가의 섬세하며 다정한 문체, 피터 레이놀즈 작가 특유의 화려한 색감의 그림체로 전달받는 메시지는 명료합니다.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말이 곧 나를 설명하고 표현하고 정의하는 말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내 안에서 나를 가리는 말을 잠재우고, 나를 알게 하는 말을 발견해 가자는 것.



내게서 나와서 나를 따스하게 감싸고 단단하게 세우는 말. 내 앞에서, 네 곁에서, 세상 안에서 내가 나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를 지키는 말. “진정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누군지 알게 해주는” 선한 한 마디, 다정한 한 문장을 매일의 나에게 건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도적으로 의지를 갖고서 나에게 멋진 말을 해 주는 그때만큼은, 스스로를 향해 활짝 웃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한 번은, 그렇게 내가 나를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들려줄 말은 내가 스스로 골라요. 내가 지닌 선한 마음과 내가 해 온 노력을 품은 말을 골라요.”


지금의 나를 긍정하는 .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 지금의 나를 닮은 . 나에게 주는 멋진 들로 자신을 말하고 만들고 다듬고 가꿔보자 응원하는 친절한 마음이 세상의 모든 색으로 담긴 듯한 그림책과 함께, 오늘의 저는 오늘의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 울었어, 그쳤어, 일어났어.”



**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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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언젠가는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31
어맨다 고먼 지음,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 김지은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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쫙 펼친 앞면지를 꽉 채운 쓰레기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버렸기에,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습니다. 모든 게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기에,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그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거리의 쓰레기 더미를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치지 못 하는 한 아이의 눈길을 따라가면서요. 거리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지키고 키우고 피우는 여러 아이들의 손길을 따라가면서요. 


그렇게 이야기는 책장 밖 ‘바로 여기’로 이어집니다. 보고 듣고 마주칠 때마다 우리의 걸음과 믿음을 무너트리는 현실 속 크고 작은 사회 문제 더미들로요. 어느새 너무도 만연해져 바로 잡고 바꿔야 한다는 분노와 슬픔까지 조금씩 무뎌져 가는 현실 속 작고 작은 우리의 마음들로요.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체념과 무시라는 쉽고 편한 선택지로부터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해 ‘무엇이든’ 기꺼이 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달라질 거란 믿음을 ‘연대’라는 이름의 현실로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이 고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책임을 일상 속 작은 실천을 꾸준히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계속해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나이와 성별, 인종과 외양, 언어와 출신의 구분 없이 손을 모으고 맞잡은 모든 이들에 의해서요. 각자와 모두의 암울한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고개 숙이지 않기를 선택한 모든 이들을 위해서요.


“어느 순간 네가 옳다고 믿은 것이 눈앞에 있을 거야. 네가 도와서 바로잡은 것들이 바로 거기에 있어. 처음에는 작았지만 커다랗게 달라져 있을 거야.”

- ⟪무엇이든, 언젠가는⟫ 中





마지막 장면에 적힌 ‘한 단어’의 실현을 꿈꾸는 일.

앞면지를 꽉 채웠던 쓰레기들이 모두 사라진 뒷면지로의 변화를 바라는 일.

이 모두를 “헛된 희망”이라 여기지 않고서 매일의 작은 행동과 더딘 변화를 선택하고 선택해 갈 모든 ‘누군가(somebody)’들에게, 무엇이든, 언젠가는(Something, Someday)은 든든한 응원이자 반가운 선물로 가닿을 것만 같아요. 


저마다의 마음 속에 담긴 희망의 씨앗을 확신하는 ‘어맨다 고먼’ 시인의 글. 그 믿음 위에 모두를 위한 행복과 사랑이라는 꽃을 피워낸 ‘크리스티안 로빈슨’ 작가의 그림. 명료하게 전달받은 용기와 지지의 마음 위에, 최근에 다시 읽은 책 속에서 만난 문장 하나를 올려두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어디서든 활짝 필 수 있는 해바라기를, 믿으면서요.


 유일한 희망의 말은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이다. 깨버려야 것은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일이 없다 생각이다.”

- 정혜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위고, p.201-202







**주니어RHK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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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양이와 수도사 비룡소의 그림동화 327
조 앨런 보가트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한정원 옮김 / 비룡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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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의 어느 그림책 수업 시간. 그림책 원서 한 권을 함께 펼쳐보며 모두가 한목소리로 감탄한 적이 있었다. 두껍고도 매끄러운 아웃라인, 또렷한 눈망울, 새하얀 색채로 그려진 이 고양이를 어쩌면 좋죠… 아무렇지 않게 수도사의 방에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고양이를 어쩌면 좋죠… 자신의 조그만 방 안에서 함께 지내는 흰 고양이를 지켜보며 입가에 옅은 호선을 그리는 수도사. 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로 수도사의 시를 청해 들으며, 그와 흰 고양이의 모습을 다함께 감상하며, 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이리 말했더랬다. (한숨 섞인 웃음과 함께) 왜 저만 고양이가 없는 거죠…… 왜 아직도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거죠……





지금으로부터 천 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시기에 고대 아일랜드어로 쓰인 시 팡구르 반. 21세기의 독자들이 이 오래된 시를 보다 더 평온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펜의 시 위에 붓의 시를 그려간 시드니 스미스 작가. 그의 익숙한 (그리고 사랑스럽고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진 흰 고양이와 수도사의 이야기를 마침내 한국어판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겨울날. 생각지도 못한 때에 맞고 맡게 된 이 포근한 기쁨을 품 안에 소중히 끌어안아 본다.





자신의 작은 방을 함께 나눠 쓰는 친구, 흰 고양이 ‘팡구르’를 바라보며 수도사는 한 편의 시를 적어 내려간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서 각자 몰두하는 ‘일(work)’의 다르고도 같음을 지켜보며 지키는 시를.


같은 밤, 같은 방. 그 안에서 흰 고양이와 수도사가 행하는 모든 ‘동사(verb)’의 목적어는 서로 다르다. 응시하기(stare), 추구하기(pursue), 배우기(study), 사냥하기(hunt), 찾기(find), 기뻐하기(feel joy)… 서로 접하지 않는 평행선 위에서, 둘은 각자만의 시선과 몸짓으로 각자의 무엇을 쫓아간다. 동시에 서로의 무엇을 함께 지켜본다. 서로의 다름을 지켜보는 방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밤 안에서, 흰 고양이와 수도사는 함께 행복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간다. 각자의 기쁨을 모두의 기쁨으로 이을 수 있는 ‘우리’로서의 맥락을 발견하며. 


뒷표지에 담긴 추천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아이들을 차분하게 하고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하는 탁월한 잠자리 그림책.”

탁월한 표현의 주어를 내 맘대로 바꾸면서, 이 그림책을 나의 잠자리 그림책장에 살포시 꽂아 넣었다. 하루동안 애써 쌓고 살았던 수많은 동사에 공감 어린 응원을 보내주고 싶을 때마다, 쉽사리 완료형으로 바뀌지 않는 수많은 동사로부터 파생되는 매일의 지난함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서로 다른 너와 나의 평행선 위에 희붐한 해(sun/answer)가 떠오르기를 바랄 때마다, 주저없이 꺼내어 펼쳐보고픈 흰 고양이와 수도사. 부디 나의 숱한 밤과 작은 방 안에서, 매일의 수고를 다한 ‘나’를 차분하게 하고 명상의 시간으로 인도해 주길.



**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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