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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ㅣ project B
라울 니에토 구리디 지음, 문주선 옮김 / 반달(킨더랜드) / 2023년 6월
평점 :

앞표지와 뒤표지를 함께 바라본다. 제목이 적힌 검은 책등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 벽처럼 보인다. 키도, 피부 색도, 생김새도 다른 두 사람. 벽을 사이에 두고서, 두 사람은 어떤 말을 하려는 걸까.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한 장씩 천천히 넘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그림과 응축된 문장, 그 주위를 감싸는 드넓은 여백이 나의 말을, 나의 삶을 묻는다. 당신의 삶이 발화할 수 있는 수많은 ‘말’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말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동사動詞’를 떠올려보세요. 당신에게서 구름처럼 피어난 문장들을 당신은 어떤 얼굴로 말하고 있나요. 어떤 얼굴로 삼키고 있나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나요.

돌이킬 수 없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말. 어떻게든 서로의 틀어진 방향과 위치를 되돌리고 싶지만, 아직 서로에게 가 닿지 못한 말. 골똘히 생각해도 쉬이 떠오르지 않는 말. 남들에게는 했지만 당신에겐 하지 않은 말. 각자의 날숨과 섞여 서로의 들숨이 된 살며시 건넨 말・・・・・・ 모든 것이 다른 너와 내가 서로에게 다다르기 위해 각자의 자장 안에서 함께 완성해야 하는 ‘말’을 사유하게 하는 그림책, ⟪말⟫. 작품에서 퍼져 나오는 고요한 울림 속에서, 우리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과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을 생각한다. 우리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우리가 말로써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면지 양쪽에는 두 얼굴이 그려져 있다. 왼쪽의 얼굴에는 수어를 표현한 그림이, 오른쪽의 얼굴에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같은 언어를 사용할 두 사람. 그러나 각자가 주로 사용하는 기표 자체만으로는 상대에게 충분히 기의를 전할 수 없을 두 사람. 서로의 말을 해석해 소통할 의지가 필요할 두 사람.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견뎌내 비로소 각자의, 서로의, 하나의 말로 진심을 마주 보고 듣고 나눌 두 사람. 당신과 나는 왼쪽의 사람이기도, 오른쪽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한 문장’을 계속해서 곱씹어본다. 결국 이 한 문장을 완성할 용기가 당신과 나 사이의 검은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어줄 거라 생각하면서.
* projectB 서평단 'B평가'로 선정되어 킨더랜드+반달 출판사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