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유현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5월
평점 :

도시 한 편의 작은 텃밭. 그곳에서 ‘함께 세 들어 사는’ 생명들과 함께 더하고 곱하고 나눈 기쁨을 담은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어지러운 마음과 고단한 몸을 구원했던 텃밭에서의 시간은 사계의 흐름을 따라 기록되어 있다. 일부러 심었든 저절로 심겼든 인간의 때가 아닌자신의 때에 맞춰 세상 밖으로 고개 내밀 생명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 텃밭 안팎에서 자신을 부르는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노닌 시간. 텃밭에 찾아온 애벌레 인간, 호랑거미 인간, 사마귀 인간 등에게 다정히 말을 걸며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상상했던 시간. 부지런히 청갓을 갉아먹은 범인들의 모습을 어여삐 바라봤던 시간. 알을 품은 엄마 사마귀를 애틋하게 지켜봤던 시간. 텃밭이 내어준 넉넉함을 아파트 이웃들과 나누며 마음까지 넉넉해진 시간・・・. 텃밭에서 그리고 적어내려간 성장과 관찰, 만남과 돌봄, 공감과 공존의 기록은 ‘사랑의 기억’들로 가득 들어차있다.
📚p.208 / 마음과 손은 바쁜데 시간에 쫓기고 모기한테도 쫓기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생각 꽃이 피어났다. 이 조그만 밭이, 흙이, 나를 조건 없이 통째로 받아주는구나, 하는. 씨를 넣고 모종을 심느라 흙을 계속 매만지는 동안 정작 흙이 나를 어루만지고, 흙과 나 사이 오래된 신뢰의 감정이 모깃불 연기처럼 따스하게 피어났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일 수 있을까.

인간 동물이 초래한 기후 위기의 영향을 고대로 제 몸에 새긴 텃밭. 그럼에도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 모두를 먹이고 돌보고 살리는 텃밭. 무수한 소우주가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텃밭’이라는 은하 속에서, 평범한 하루마저도 굉장한 날이 되는 찬란한 기쁨을 전하는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책상 위 작고 좁은 책꽂이에 이 책을 꽂아두었다. 다가올 절기에 맞추어, 공전과 자전의 흐름을 따라가며, 한두 장씩 펼쳐 읽으려고. 그렇게 해서라도 향긋한 쑥 내음으로 오는 봄을, 분꽃에 한껏 홀리는 여름을, 배추라는 커다란 푸른 꽃을 피우는 가을을, 왕겨와 비닐과 흰 눈이 도톰한 이불이 되어주는 겨울을 깊이 기억하고 싶다. 가끔씩 찾아가는 엄마의 텃밭에서 확인하고 확신할 ‘흙 엄마’의 사랑을 미리 상상하고 싶다.
기억 속에서 이름 없이 어렴풋하게 존재했던 이들에게 비로소 붙일 수 있게 된 그 이름, 비름나물과 까마중. 살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육십 대 중반의 엄마의 몸과 삶, 그리고 텃밭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고마운 땅의 반가운 단서들. 갓 딴 옥수수를 바로 삶아 먹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찐 단맛'을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한 작년 여름의 기억. 엄마아빠의 귀촌 전에는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었던, 그러나 이제는 자주 얻어먹으며 자연스레 나의 최애 반찬이 된 고구마순 요리들.
발은 강마루 바닥을 디디고 손은 텃밭의 책을 어루만지며, 선명하게 내 것이 된 기쁨을 적어본다. 그 위에다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싶은 충만한 기쁨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직접 ‘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찾아보고 들여다보고 마주보고 싶은 경이로운 사랑을 마음속으로 적어본다.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텃밭의 축복’을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 내어준 나의 부모님.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달걀판’ 팁을 두 분께 빨리 알려드리고 싶다. (직접 시연하면서!) 여름에 몹시 유용할 그 팁이 뭐냐고요? 책을 펼쳐 직접 확인해 보시길 :)


** 오후의소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