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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헤어졌어 ㅣ 문지아이들 173
김양미 지음, 김효은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평점 :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저마다 다른 존재와 이별해 가는 다섯 어린이들. 이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웅덩이에 고여있는 듯한 슬픔의 언어로 쓰여있지 않다. 먼 곳으로 이사 가는 친구,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사로 인해 떠나야 하는 오래된 집, 모양새의 낡음이 기억의 낡음을 의미하지 않는 물건들・・・ 이 모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과 오해, 이해와 화해의 과정 속에서 어린이는 자신의 솔직하고도 내밀한 감정을 마주해 나간다. 상대의 어렴풋하나 분명했던 마음을 마주해 나간다. 지나간 시간을 자신의 방식대로 천천히 돌아본다. 지나친 마음을 상대의 방식대로 찬찬히 돌아본다.
그리하여 그 누구도 붙잡거나 붙잡히지 않는 이별의 시점을, 나를 나로 그리고 너를 너로 두는 이별의 기점을 ‘함께’ 넘어선다. 하나의 관계를 ‘잘 떠나보내는’ 시간은 또 다른 관계를 ‘잘 시작하는’ 기회가 되어간다. 나의 한계이자 정체성을 말하는 나의 문장과 너의 한계이자 정체성을 말하는 너의 문장이 우리 관계의 ‘전제’가 된다면, 그 어떤 관계라도 튼튼하게 이어가고 씩씩하게 떠나보낼 수 있음을 배워나가며.
📚p.155 / 이제 나도 네 마음을 먼저 물어보는 친구가 되어 보고 싶어. (그치만 너 나 알지? 늘 그럴 수는 없을 거야.)
누군가 또는 무언가와 맺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어린이의 마음.
너와 나 모두가 닳아가는 ‘닮음’을 요구하는 관계가 아닌, 너와 나 서로를 알아가는 ‘다름’을 지키는 관계를 체득해 나가는 어린이의 용기.
물리적 이별의 시간이 심리적 상실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도록, 앞과 뒤 어느 쪽에도 매몰되지 않으려 애쓰는 어린이의 노력.
관계의 지난함을 매일 경험하며 살아가는 모든 어린이의 마음에 다정히 가닿을 섬세한 문장들이 가득 담긴 ⟪잘 헤어졌어⟫. 수많은 갈래의 관계 안팎에서 고민하는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관계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어려운 어른들에게도) 비밀 친구 ‘알도’가 되어줄 한 권의 동화집 앞에서, “잘 헤어졌어”라고 말하고픈 내 어떤 관계를 떠올린다. 이별한 지 한참이 지났으나 여전히 제대로 이별하지 못 한 누군가와 무언가를.

*문학과지성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