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작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 - 텃밭 시 그림책 그림책은 내 친구 69
유현미 지음 / 논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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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밟고 흙을 만지고 흙을 탐구하는 시간은 어린 시절의 내 것이 아니었다. 뭔가에 스치고 닿는 감각에 몹시 민감했던 나의 기질 때문이었고, 밭을 만나기 힘든 도시 어린이의 환경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손주들에게 흙을 밟고 흙을 만지고 흙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내어주기 위해 연고 없는 지역으로 귀촌을 결정한 부모님께 늘 감사했다. 더불어 나의 예민한 기질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음에도 할머니댁에 가면 밭에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는 아이에게도 늘 고마웠다. 삼대三代가 흙 위에 모여 밭의 노래를 맡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더해줄 한 권의 그림책 앞에서 고백하는, 나의 진심이다.





‘텃밭 시 그림책’이라는 책의 특성을 더없이 잘 담아낸 길고 긴 제목, 『아그작 아그작 쪽 쪽 쪽 츠빗 츠빗 츠빗』. 텃밭에서 삶을 틔우고 키우는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는 듯한 제목을 읊조리며 한 장씩 천천히 넘긴다. 계절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서, 다정의 마음이 한 겹씩 쌓여간다. 보드라운 맨몸으로 추위와 싸우느라 멍이 든 노지 시금치에 감탄하며. 조금씩 온기와 밝기, 세기를 높여가는 자연의 손길 아래 첫 싹과 첫 열매를 내어놓는 땅에 감사하며. 쏟아져 나오는 텃밭의 작물을 당연하게도 이웃과 나누어 먹으려는 마음에 감동하며. 삶을 먹이고 죽음을 먹으며 ‘순환’이라는 이치를 살아내는 생명의 장엄함 앞에 고개를 숙이며. 벌레와 곤충과 사람 모두의 미각을 만족시켜 주는 콩잎의 듬성듬성한 구멍 사이로 후후 바람을 불어넣으며. 길고 깊은 겨울밤에 가족과 함께 무 방귀를 퐁퐁 뀌었다는 이야기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도시 변두리의 작은 텃밭. 그 안에서 직접 체험한 사계의 시詩를 틈틈이 그려내고 적어낸 이 그림책은 흙의 가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이의 ‘존귀함’을 간증하고 있다. 작가님이 그린 원화를 그대로 엮어 만든 듯한 책의 질감과 색감은 찬탄을 자아낸다. 자라나고 퍼져가고 피어나는 생명들의 시계에 맞춰 자신의 몸을 숙이고 펴고 굽히고 뻗었던 기억의 기록은 (그 색과 태를 불문하고) 모두가 찬란하다.


밭일 사이사이에 그리기를 반복했던 작가님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그림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생각한다. 내가 모르고 자랐던, 내가 만나지 못했던, 내가 불러본 적 없던 밭의 노래를 나의 눈으로 조금씩 배워가며 나의 입으로 조금씩 흥얼거리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밭을 찾아가 ‘흙의 시’를 발견하고 부를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나이 든 부모님과 나이 어린 아이만을 위한 축복이지 않도록.


봄보다 먼저 온 냉이의 뿌리 향을 맡고 싶어지는 삼월의 어느 날.

따스한 볕이 모든 존재의 생장을 힘껏 격려하고 있다.





“평생 농사꾼이었던 춘하씨에게”라는 문장 앞에서, 아흔 살의 나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던 ‘유춘하’ 작가를 떠올린다. 아버지와 함께 그렸던 그림책 #쑥갓꽃을그렸어 . 그리고 아버지를 깊게 그리워하는 듯한 그림책, #아그작아그작쪽쪽쪽츠빗츠빗츠빗 .  두 사람이 함께 일군 ‘인생’이라는 밭의 기록이자 기억처럼 느껴지는 두 권의 그림책 모두가 귀하다.



* 논장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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