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 익스프레스 비룡소의 그림동화 316
크리스 반 알스버그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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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겨울밤은 한국의 그것보다 좀 더 일찍 찾아왔다. 하늘이 완전히 눈을 감아버리는 시간, 오후 네시 반. 이내 하늘 아래 곳곳에서 뜨인 크고 작은 눈들이 각자의 빛을 발하며 이르게 찾아온 겨울밤을 환히 밝혔다. 그곳의 겨울은, 겨울의 그곳은 화려한 불빛에 에워싸인 누구라도 황홀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마법 같은 시공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이들의 설렘과 기다림이 거리 가득 빛나고 있는 그때의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북극으로 가는 특급 기차’를 만나게 되었다. 


함께 성탄을 준비하는 교회 사람들 명이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 목소리 출연을 배우라는 사실은, 자리에 함께 모든 이들을 자연스레 단체 감상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홀로 동양인인 동네에서 한글 자막은 기대하기 힘든 친절이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놓치지 않았던 기억이 여전하다. 영화 모든 대사를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번역이 필요없는 영롱한방울소리만큼은 이십 초반 이방인의 마음에도 선명히 울리고 충분히 퍼져나갔다. 산타가 아닌 믿고 따르는 공동체 안에서 어른이든 아이든 산타의 썰매에 달린 은방울 소리에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음이 어쩐지 배덕(?) 행위처럼 느껴졌던 어느 겨울밤.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울리는 하나의 소리가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연결되는 하나의 마음처럼 느껴진, 마법 같은 시공간이었다.




그 후로 열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동안 나는 ‘방울 소리’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여섯 살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 겨울, 이 그림책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산타의 존재를 믿을 기회를 박탈당한 채로 살아온 엄마. 아주 어릴 때부터 산타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살아온 아이. 우리 두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책장을 넘겨나갔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산타가 없다고 믿는 친구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산타의 썰매에 매달려 딸랑딸랑 울릴 방울 소리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한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의 집 앞에 커다란 기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선다. 북극으로 향한다는 그 기차에 떨리는 마음과 걸음으로 올라타니, 이미 그 안에는 산타의 존재를 믿고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캐럴을 부르고, 따듯한 코코아를 나눠 마시며 아이들은 쉬이 잠들 수 없는 밤을 함께 지나갔다. 하나의 마음으로.


기차가 달리는 높고 험한 길 주변에는 으스스한 어둠과 무시무시한 공포가 가득하다. 산타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믿는 모든 마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이들을 태운 기차는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마침내 아이들은 산타와 그를 돕는 요정들이 살고 있는 북극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온 모든 아이들을 울고 웃게 할, 꿈같은 현실이자 현실 같은 꿈이다.


엄마와 함께 몇 번을 기차에 올라타고 내릴 때마다 아이는 계속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낯선 모습으로 묘사된 북극 도시에. 더불어 더는 방울 소리를 믿지 않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전자에 대한 당황은 기존에 수많은 매체나 그림책 등에서 접해왔던 산타 마을과는 ‘다른’ 이미지에서 기인했고, 후자에 대한 당황은 자신은 살며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어른들의 (제 기준에서) ‘틀린’ 의심에서 기인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매일 저녁 계속해서 책장 너머의 특급 기차를 기다린다. 위에 힘차게 올라탄다. 나도 아이와 함께 올라탄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기다린다. 서너밤 뒤에 곳곳에서 널리 울려 퍼질 준비를 마쳤을, 맑고 아름다운 방울 소리를. 현실의 어둠과 공포를 없앨 없어도,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 마음을 느낄 있도록 도울 반가운 방울 소리를. 그리하여 서로의 곁에서 잠시나마 함께 웃을 있도록 누구의 마음 문이라도 환하게 두드릴, 마법의 소리를.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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