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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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소중한 이의 죽음, 가족이나 소중한 이와의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이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이로부터 받은 신체적・정서적 학대, 낡고 지친 부모의 곁에서 함께 낡아가고 지쳐가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완벽한 타인이 된 자녀와의 거리감, 간절하게 소원하는 무엇을 제 손에 쥘 수 없는 아이의 슬픔, 그런 아이의 빈 손을 빈 손으로 맞잡는 부모의 한숨・・・・・・. 장희원 작가의 첫 소설집에 담긴 아홉 개의 단편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상실과 이별, 결여의 과정을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떤 상실은 “도저히 눈이 부셔서 똑바로 눈 뜨고 볼 수가 없는(우리의 환대)” 고통스러운 빛과도 같다. 떠오르는 그 빛을 더는 피하지 않고 마주해 받아들여야 하지만, 용기가 쉽게 나질 않는다. 이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이, 내 것이라 믿었던 사랑이 다시는 내가 바라던 모습으로 내게 돌아올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낯선 식감의 감자 샐러드를 더는 씹지 못하고 뱉어내는 것처럼 엉망진창인 일이기만 하다. 어떤 상실은 “저걸 받지(crash) 않고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폐차)” 필연적 의지가 투영된 과정으로 나타난다. 이미 오래전 꺼져버린 사랑의 곁에서 평생을 내내 버림받고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 사람. 그는, 그들은 이제 정말로 가만하게 살고 싶다. 더는 잃을 것도, 잃을 마음도 없이. 어떤 상실은 “자꾸만 떨쳐내려고 해도, 차곡차곡 시간을 두고 쌓인 잎들이 물길을 막고 있는(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듯 조금씩 천천히 썩어가는 냄새로 삶에 배겨버린다. 어떤 상실 뒤에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상실의 시공간에 “두고 있는 마음, 저버리지 못하는 마음(기원과 기도)”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이미 지나갔지만 완전히 지나오지는 않은 지난날을 계속해서 되짚는 이들이 있다.


작가는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그 사건을 지나가는 속도와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진실을 작품마다 다른 문장들로 표현했다. 이 당연한 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서로에게 새로운 상처를 내어주고 가여운 눈물을 받아내는 현실을 그려냈다. 가끔씩 ‘우리’라는 장면으로 겹쳐졌다 이내 벌어져 대체로 홀로인 우리의 시간을 기록했다. 종이 위에 단어와 문단과 문장으로 직조한 삶은, 언제나 ‘우리’ 일 수 없는 나와 당신의 한계를 말한다. 마음과 마음의 불가해성과 불일치성을 발한다.


그러나 그 어떤 단어나 문단과 문장도 시리고 아린 삶의 뚫린 구멍(혹은 공허한 빈자리) 안에 서 있는 당신에게 성급하게 성긴 포옹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저 거리를 두고서 가만히 지켜보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천천히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는(우리의 환대)” 과정이 그저 너를, 나를, 우리를 잃어가기만 하는 과정이지만은 않기를 바란다고. 매일 무언가와 누군가와 어딘가를 잃어가는 각자의 일상이 그럼에도 “매일매일 조금 더 나은, 미세하지만 조금 더 근사한 방향으로 가기를(Give me a hand)” 바란다고. “모든 게 다 타버렸는데도 남은 것, 사라지지 않은 것(남겨진 사람들)”에 미련을 두는 마음을 향해 감히 미련하다 말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비록 네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너를 이해하는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 해도, 충실히 변해가는 계절들이 남긴 잔상을 각자의 최선을 다해 더듬어 가기를 바란다고. 결국 시제가 일치하지 않은 이해일지언정, 그것이 ‘우리’ 모두를 안는 위로와 환대로 와닿고 가닿기를 바란다고.


해설에 실린 이소 문학평론가의 문장에 천천히 힘주어 밑줄을 긋는다. “계절은 무수히 피었다 지고, 우리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계절을 해독하며 살아간다.” 크고 작은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해독제가 되어줄 책과 참말로 어울리는 문장.



* 이 글은 문학과지성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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