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빨강 - 우정과 생리에 관한 숨김없는 이야기 비룡소 그래픽노블
릴리 윌리엄스 지음, 카렌 슈니먼 그림, 김지은 옮김 / 비룡소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속옷에서 생리혈을 처음 발견했던 날. 어설프게 생리대를 차고서 어정쩡하게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던 날. 누가 낫으로 내 뱃속을 긁어내고 있는 듯한 고통을 살면서 처음 느꼈던 날. 자고 일어났을 때 또는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내가 머물렀던 곳과 내가 입었던 옷에 빨간 흔적을 남길까 봐 불안함에 종종거렸던 날들. 각종 민간요법과 각종 생리대와 각종 진통제를 다 써봤으나 모두가 별 효과가 없던 날들. 그리하여 한 달에 이틀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아파하기만 했던 날들. 생리와 관련된 지난 이십여 년의 기억을 되돌아본다. 어떤 장면은 흐릿하고, 어떤 장면은 생생하다. 그러나 모든 장면이 분명한 고통이었다. 사실 지금 이 글도 ‘질’을 둘러싼 모든 뼈가 갈리는 듯한 고통(이걸 이렇게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에 원통함을 느낀다)을 참아가며 쓰고 있는 중이다. 내 앞에 놓인 붉은빛의 그래픽 노블에 한없이 감탄하면서. 더 이상 이 고통에 홀로 외로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아도 되는 날들을 상상하면서.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크고 작은 갈등과 혼란, 공감과 연대의 상황을 ‘생리’라는 주제 하에 유쾌 통쾌하게 그려낸 ’아주 그냥 보통의 친구’들의 이야기, 『너와 나의 빨강』.  사샤, 크리스틴, 애비, 브릿 등 네 명의 십 대 소녀들은 생리하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 노력한다. 그 몸을 둘러싼 불친절한 편견과 불공정한 시스템에 자신들의 방법으로 균열을 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는 법과 옳다 여기는 것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법을 체득해간다. 이야기를 가득 메우고 채우는 소녀들의 당당하고 단단한 목소리. 이는 내 몸을 알아주고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했고 필요하고 필요할 ‘거기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분명한 위안이자 희열로 다가간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더 큰 균열과 변화와 연대의 흐름이 이어진다. 숨겨지고 가려져 있었으나 마땅히 드러나고 보여야 할 ‘빨강의 정상성’을 함께 드러내며.


더 이상 까만 비닐봉지 안에 생리대를 숨겨서 들고 다닐 필요도 이유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 피할 수 없는 몸의 고통이 사회・문화・경제・의학적으로 외면받지 않는, 그리하여 누구도 더는 그 고통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외로움을 겪지 않는 세상. 몸에서 흘러내리는 빨간 피가 놀림과 조롱, 수치와 굴욕의 대상이 아님을 당연하게 말하고 보여주는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른 누군가를 쉽게 혐오하고 차별하는 도구로서가 아닌, 다름 위에서 함께 연대와 공감의 의지를 다지는 수단으로 각종 sns를 활용하는 세상. 더는 그 어떤 대명사로도 치환되지 않을 너와 나, 우리 모두의 ‘빨강’을 자유롭게 발화하는 세상. 그곳과 그날을 향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모든 걸음을 힘껏 지지하는 문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p.210 '우리 집안 여자들은 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단다.'


온통 붉은 톤으로 채색되어 있는 이 멋진 그래픽 노블을 나의 아이와 같이 읽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눠볼 날을 기대한다. 그 날이 오길 기다리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 나의 크고 작은 최선을 다하려 한다. 생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도 괜찮은 ‘남자’가 아닌, 생리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으로 자라 갈 수 있도록. 무지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기울어진 세상을 아이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성별과 젠더의 구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타자와의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로 우리 모두가 함께 자라 가고 살아갈 수 있도록. 


* 글은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