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0까지 사랑의 편지
토마 바스 지음, 이세진 옮김, 수지 모건스턴 원작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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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열 살 남자아이 에르네스트. 아이의 일상은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단조롭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규칙, 정해진 공간을 벗어나지 않는 아이의 하루에는 지금껏 누구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던 그늘이 내려앉아있다. 자신을 낳을 때 사고로 죽은 엄마와 사고 직후 자신의 곁을 떠난 아빠의 부재(不在)로 인한 어두운 그늘이. 에르네스트를 돌보는 프레시외즈 할머니 또한 1차 대전 때 아버지를, 2차 대전 때 남편을 잃은 아픔을 끌어안고 떠나간 이들만 생각하며 정적인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닫혀있고 갇혀있는 이들의 일상에, 마지못해 살아가는 이들의 하루에 조금씩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한 이가 등장했다. 바로 에르네스트의 학교에 새로 전학 온 명랑한 여자아이 ‘빅투아르’. 열두명의 아들만 줄줄이 낳다가 얻은 귀한 딸에게 ‘승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가정에서 자란 빅투아르는 에르네스트의 일상에 낯선 단어들을 소개한다. 호기심, 관심, 기쁨, 슬픔, 즐거움, 도전, 변화・・・ 그리고 무기력으로부터의 ‘승리’. 여태껏 만나지도 맛보지도 경험하지도 못 한 단어들은 조금씩 싱그러운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에르네스트와 할머니의 경직된 규칙과 소리 없는 하루에.


빅투아르와 빅투아르를 통해 알게 된 인연들로 인해, 에르네스트는 새로운 세상으로 뻗어가고 나아가기 위한 기지개를 활짝 켠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던 자신의 아픔을 향해 스스로의 걸음으로 다가간다. 직접 문을 두드리며 그 너머를 만나고 알게 되길 소망한다. 평생 안에서만 머무르게 했던 선(line)을 넘어가려는 용기를 내려할 때, 에르네스트는 비로소 ‘선의 부재(不在)’를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선은 자신 앞에 그어져 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순간, 에르네스트에게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나이가 0에서 10이 될 때까지 한 순간도 자신을 잊지 않고 사랑했던 이의 진심이.


한 사람의 마음 문이 열리는 과정. 자신을 둘러싼 관계의 물길이 바뀌어 모두가 함께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고 서로의 연결을 확인하는 과정. 밋밋하고 어두컴컴했던 일상이 밝고 다채로워지는 과정. 그가 품고 그를 품는 세상이 넓고 깊어지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든든히 지지하며 자신들의 관심과 사랑을 넉넉히 나눠주었던 이들의 마음을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담아낸 한 편의 그래픽 노블. 아이와 아이의 가족, 아이의 세계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여러 번을 반복해 읽는 동안 나 자신에게 여러 번 되물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언제든 다정히 ‘선의 부재’를 말해줄 수 있는, 아니 ‘선의 부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내게 있어 ‘선의 부재’를 말하고 보여주는 다정한 ‘빅투아르’는 누구인지. 무의미한듯한 생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관계, 무기력으로부터의 ‘승리’를 지원하며 지지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모른척하거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이 물음들을 계속해서 상기하며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 한 권의 ‘사랑’을 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아주 작은 사랑의 표현과 관심이 누군가의 하루를, 일상을, 평생을 바꿀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구하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펼칠 수 있도록. 마음껏 확신할 수 있도록.


사실은, 자체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계속 옆에 두고 싶은 마음도 크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사는 것처럼 살아보셔야죠.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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