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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내 삶에 그 흔적이 존재할 리 없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내 삶에 그 흔적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는 열일곱의 나에게로 여행을 떠나보았다. 학교 밴드 동아리 활동에 푹 빠져 지냈던 그 시기. 아침부터 밤까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하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10대 후반의 열정과 체력을 쏟아부었던 그 시기. 점점 떨어지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 협박하는 담임과 학년부장 선생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그 시기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의 열정에 충실했던 친구들과 함께 연주한 수많은 곡들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내 삶의 BGM으로 흘러나온다. 그렇게까지 뜨거운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기가 내 생에 다시 없었음을 아쉬워할 때마다. 일방적인 교육 및 입시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수백명의 또래로 가득했던 그 곳에서 주변의 눈총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것 저것 재지 않으며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갔던 우리 모두의 용기를 그리워할 때마다.
대학을 가기 위한 모두의 레이스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는 수능을 1년 앞둔 날, 건반과 기타와 드럼에서 손을 떼고 교실로 돌아갔다. 각종 점수와 기준으로 등급과 자격을 판정받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조금씩 꼰대가 되어가며 사회를 이루는 한 조각의 퍼즐로 살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때를 가끔씩 함께 추억하면서. 그때로 돌아갈 수 없고, 그때처럼 지낼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견디면서.
1969년의 일본. 자신들을 둘러싼 체제의 지배를 거스르며 당당히 자신들의 즐거움을 쫓아갔던 젊은 청춘들. 그들을 움직이게 한 행동의 시발점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든, 생각과 언행을 뒤흔드는 정치적 신념이든, 무언가나 누군가를 향한 존경 혹은 반항의 감정이든. 그들의 행동은 그들을 빛나게 했고, 그들의 즐거움은 그들 모두를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게 도왔다.
둘러싼 환경과 현실이 암울할 지라도,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건 십대의 젊음과 패기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걸까. 시간을 되돌려 열일곱의 나와 친구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 어린 친구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만 같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내가 열일곱의 나처럼 즐겁게 살 수 없단건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가, 십수년 전의 어린 나의 이야기가 가끔 내 인생의 방향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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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정단7기 에 선정되어 #작가정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