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블루레이] 꼬방동네 사람들
배창호 감독, 공옥진 외 출연 / 한국영상자료원 / 2017년 7월
평점 :

1
[꼬방동네 사람들]은 지난 7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블루레이로 출시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부터 필수 구매 예정 상품이었습니다. 예전부터 간직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죠. 온라인 판매처에서 예약 구매로 상품 정보가 올라왔을 때부터 장바구니에 넣어 놨습니다. 바로 구입은 안 했어요. 구입하려고 장바구니에 넣은게 아니라 갖고 싶은 목록 작성을 위해 보관해 놓은것뿐이죠. 한국영상자료원의 타이틀이야 품귀 현상과는 거리가 먼데다 원래 타이틀 구매할 때 느긋해서 구매 경쟁에 참여하지는 않거든요. 가뜩이나 비싼 블루레이, 맨 처음 제시된 소비지가로 제 값 다 주고 구입할 생각은 없었고 중고를 기다렸죠. 언제고 풀릴것이라 희망하는 오프라인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 그때나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역시 한국영상자료원 블루레이답게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는 아직까지 품절되지 않았습니다. 블루레이 출시일이 2017년 7월 6일이니 아직 중고 매물이 풀릴 시기도 아니고요. 블루레이는 알라딘에서 중고나 새 제품이나 가격차가 크게 벌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중고 못 구하면 새 제품으로 사면 그만이었습니다. 이왕이면 몇 천원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에 일단은 중고로 눈을 돌린것이지만요.
영화는 이미 2012년 4월 30일 등록 기준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의 유튜브 계정에서 무료로 서비스되고 있었기 때문에 구해보기가 쉬웠죠. 그게 벌써 5년이나 지났군요. 그 전에 케이블에서 심야 시간대에 방영하는걸 채널을 돌리다가 운좋게도 시간 딱 맞춰서 볼 수 있게 돼서 감격에 젖어 감상했던 영화였는데 말이죠. 유튜브에서 복원된 화질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것도 벌써 5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블루레이는 최소 코멘터리 정도는 포함된 부가자료가 들어 있어야 구입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물리 매체로 소유하고 싶었던 [꼬방동네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돈 1만원 이상을 주고는 구입할 생각이 없었죠.
2
[꼬방동네 사람들]은 한국영상자료원 제작의 블루레이다 보니 예상했던대로 코멘터리 트랙 하나 정도는 넣어주는 성의를 보이더군요. 코멘터리 하나만으로 소유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소유욕을 당장 채울 생각은 또 없었기 때문에 장바구니에만 넣어 놓고 중고로 풀릴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오랜 시간을 버텨보자는 심산으로 느긋하게 있는데 알라딘에서 제작한 2018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탁상용 달력이 나온거죠. 전 알라딘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달력이 꼭 갖고 싶었고 달력 특성상, 그리고 매년 일어나는 알라딘의 일부 달력 품절 속도를 떠올려 봤을 때 원하는 달력 구입에 서두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2만원 이상을 구입해야지만 갖고 싶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달력을 2천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달력만 따로 판매를 하지 않아서 상품 구입으로 구매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어요. 그래서 지난 11월 3일 날 알라딘 중고매장에 들러서 어차피 결국에는 구입하게 될 장바구니 목록을 뒤져보다가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 구입으로 2만원 기준을 맞춘거죠. 알라딘에서 2018년 달력 판매를 개시한지 4일만에 달력 구입을 핑계로 미루어 뒀던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를 장만했습니다. 모처럼만에 중고가 아닌 새 제품으로 27,500원을 주고 산거였죠. 제가 구입한 알라딘 강남점은 블루레이와 cd, dvd의 경우는 중고와 새 제품을 같이 팔고 있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 구성은 단촐합니다. 소장용으로써의 가치와 구매욕을 부추기기 위해 아웃케이스와 소책자 구성을 기본적으로 채운 평범한 형태의 블루레이 타이틀 구성이죠. 블루레이가 소수의 소장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외적인 구성에 공을 들이는 제작 방식이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이 정도 분량의 소책자나 아웃케이스 구성 정도는 딱히 경쟁력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많은 한국영상자료원 제작의 블루레이처럼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도 국내의 열악한 블루레이 제작 현실에서 코멘터리 정도는 넣어 주며 최소한의 성의 표시로 복원에 힘썼다는것을 보여준 결과물인거죠.
그래도 코멘터리 녹음에 배창호 감독을 소환시킨것만 해도 어딘가요. 이것만으로도 구매 가치가 있어요. 코멘터리를 듣고 나면 생각이 조금 바뀌긴 하지만요. 블루레이 사서 영화 본편을 한번 보고 코멘터리를 들어봤습니다. 화질은 깨끗하지만 음질은 복원을 거쳤는데도 답답하더군요. 옛 후시 녹음 작품의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대신 화질은 유튜브 화질에서 향상되었기 때문에 블루레이만의 값어치는 합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디지털로 복원한 63번째 작품입니다.
3
부가자료로는 예고편과 간단한 사진 자료, 그리고 배창호 감독과 김성욱 평론가가 참여한 코멘터리가 들어 있습니다. 소책자에 두개의 [꼬방동네 사람들] 평론과 한개의 감독론이 영문 해설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참고 삼아 읽어볼만합니다. 이런 류의 블루레이 소책자 구성이 그렇듯 해설과 해석의 질보단 소장용 구성품으로써 분량이나 늘리며 양으로 승부하는거죠. 문학사상사 책들의 장황한 해설처럼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 소책자의 평론도 질보단 양입니다.
가장 중요한 배창호, 김성욱 평론가의 코멘터리 트랙은 블루레이만의 성의 표시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을것같습니다. 코멘터리에서 건질만한 내용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코멘터리를 유심히 들었지만 배창호 감독의 입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꼬방동네 사람들]만의 제작 비화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산의 한계로 한해 두편의 한국영화 블루레이만을 출시하고 있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심사숙고끝에 이 작품을 올해의 블루레이 출시작으로 결정했을것이고 예산의 압박 속에서 코멘터리 트랙이라도 넣으려고 신경을 썼을테지만 제작사가 신경을 쓴것만큼 코멘터리 내용이 풍성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그래도 없는것보다는 있는게 나으니 코멘터리는 블루레이 제작의 기본적인 성의 표시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좋을것같습니다. 코멘터리같은 부가자료의 질보다는 [꼬방동네 사람들]이 블루레이로 출시됐다는것에 의미를 두어야할것같아요. 그만큼 구매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코멘터리 내용이 들을게 없었습니다.
2015년에 배창호 감독의 투신 소동도 있었고 해서 코멘터리에서 꽉 짜인 해설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배창호 감독이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할 말을 못 찾고 있어서 아쉽더군요. 실망했다기 보다는 아직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것같아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배창호 감독이 본인 연출작 코멘터리를 하면서 이렇게 말을 못하지 않았거든요. 내용은 장면 해설 중심이라 지루하긴 했어도 장면마다 연출의 의미를 꼼꼼하게 짚어냈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코멘터리를 떠올려 보면 이번 [꼬방동네 사람들]의 블루레이 코멘터리에선 촬영 당시의 일화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것은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해석에서도 버벅댑니다. 10년 전 dvd로 출시됐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선 코멘터리에 혼자 참여했는데도 장면마다 할 말이 많았습니다.
연출 데뷔작으로도 각별한 작품이 [꼬방동네 사람들]인데도 해설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전혀 주도하지 못하고 있어요. 김성욱 평론가가 해설을 유도하기 위해 틈나는대로 질문을 던지지만 배창호 감독은 대부분의 질문을 제대로 받아 치지를 못합니다. 누구보다도 [꼬방동네 사람들]의 제작 과정을 상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감독이 제작 과정을 제대로 기억하질 못하고 있다 보니 평론가의 질문은 의미없이 영화 시간만 잡아 먹은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일수인거죠.
배창호 감독의 입에서 나온 해설 대부분이 기존에 나와 있던 [꼬방동네 사람들]과 관련된 영화 관련 정에서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것들이었습니다. 사전 검열로 권고 받은 사항 중 제목을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검은 장갑]으로 바꾸는게 어떻겠냐는것이나 너무 까다롭고 황당한 검열 기준 때문에 일단은 사전 검열을 무시하고 빈촌의 궁상맞은 현실을 담아냈고 그 상태로 심의를 받았는데 원래 기준이라면 통과되지 못할 구성이지만 검열관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넘어가줬다는 제작 일화같은것들 말이죠. 이런건 오래전부터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빈민가의 사람들을 다룬것에서 나라 망신을 시키는 요소가 있다 하여 5년간 수출 금지란 조건을 달고서야 국내 개봉이 성사된것도 익숙한 제작 비화입니다.
코멘터리를 평론가와 감독의 질의응답으로 설정한것같은데 질문의 양이 많지 않고 대답도 짧게짧게 끝나서 썰렁해지는 순간이 많아요. 보통 이런 류의 영화 코멘터리 트랙을 들어보면 평론가의 한 마디 질문에 감독은 열마디 대답을 하기 마련이라 이야이가 끊김없이 흘러 나오는데 배창호 감독은 평론가가 한마디 질문하면 딱 해당 질문에 따른 한마디 대답에서 답변을 마무리하는 식이에요. 그것도 확신할 수 없는 희미한 기억에 의지하여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버리죠. 그래서 정말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영화가 1982년작이니 오래되기도 했지만 아무리 제작 년도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배창호 감독이 갖고 있는 작품에 대한 기억이 너무 희미해서 해설하는 내내 다른 사람이 연출한 영화를 보듯 겉돌고 있습니다. 제작 당시의 인상적인 일화는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 당시 한국영화 평균 촬영 회수가 20~25회차였는데 [꼬방동네 사람들]은 평균 촬영 회차보단 많이 촬영했고 제작비도 초과했다고 합니다.
편집된 장면은 거의 없었을것이라 합니다. 머릿속에서 예상한 장면이 명확하게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에 찍어야 할 장면을 찍고 의도한대로 장면을 이어 붙인것이지 편집 과정에서 편집의 힘으로 의도와 달리 구성이 바뀌진 않았다고 합니다. 근데 이런 촬영 과정과 편집 방식은 당시 한국영화 제작방식의 일반적인 흐름이었기 때문에 배창호 감독만의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다른 감독들의 작품도 검열로 시달리지 않는 이상 편집 과정에서 찍어 놓은 장면을 상영 시간의 이유로 삭제되는 일은 별로 없었던것같습니다. 필름 값에 벌벌 떨던 시절이니 촬영 과정에서도 찍어야 할 장면만 찍기 위해 신경을 썼던것같습니다. 리허설은 별로 안 했고 대신 테이크를 여러번 가는 식으로 원하는 감정을 얻었다고 해요. 리허설을 많이 하면 배우들이 감정의 흐름을 놓칠 위험이 있어서 리허설을 많이 하는걸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안성기가 수감된 감옥은 영화사 소유의 세트입니다. 당시엔 영화사를 운영하려면 영화사 소유의 세트를 지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 촬영이 이루어진 광명시 철산동 주민들은 영화 촬영을 반대했습니다. 소음과 촬영 통제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다른 곳을 갔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겁니다. 당시엔 발전기 소리도 굉장히 컸다고 하죠. 촬영은 과거 회상 장면으로 나오는 부산 촬영을 먼저 했지만 장면 순으로 찍지는 않았습니다.
스코프 비율로 찍은건 당시 한국영화의 평균적인 촬영 방식이 스코프 비율이었기 때문에 스코프 비율을 선택한것이고 김보연에게 주제가도 부르게 한건 김보연이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며 안성기는 처음부터 염두해 준 배우라고 합니다. 김희라는 치밀한 배역 분석이나 계산된 방식이 아닌 직관에 의해 연기하는 본능적인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김성욱 평론가가 김희라와 김보연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배창호 감독은 제대로 대답을 못합니다. 김보연은 연기가 자연스러워서 캐스팅한것같다고 흐릿하게 설명할 뿐이죠.
공옥진 캐스팅도 아마도 당시 공옥진의 공연이나 자료 영상을 보고 작품의 서민적인 분위기에 어울릴것같아 섭외한것이라고만 밝힐 뿐입니다. 아들로 나오는 아역 배우는 연기력이나 배역과의 조화가 괜찮아 보여서 출연시켰다기 보다는 당시 영화에 많이 나오던 아역 배우라 캐스팅한것같다고 합니다. 배창호 감독의 설명에서 촬영 당시의 일화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설명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뿐더러 말도 너무 느려서 영화 해설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김성욱 평론가가 장황하게 장면을 분석해가며 평론가 허세로 확대 해석을 하는것도 아니고요. 감독이나 평론가나 해설하기 위한 별도의 준비를 꼼곰히 하고 녹음에 참여했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김보연이 연기한 '검은 장갑'의 기구한 인생사를 중심으로 각색됐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이동철 원작에선 검은 장갑의 비중이 영화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뛰어난 대중적인 감각으로 거쳐 나온 영화는 익숙한 서부극 구조에 통속 멜로드라마의 살을 붙여 극적인 재미로 녹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원래 설정은 수레에 짐을 가득 앃고 꼬방동네를 떠나는 김보연을 안성기가 택시로 따라가고 김보연이 멈칫하면 안성기도 정차하는것을 반복하는식으로 매듭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녀주인공의 관계를 열린 결말로 처리하는것보다 확실한 결말을 내는게 좋을것같아서 제작진과의 회의 끝에 촬영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결말로 수정됐습니다. 영화에 깨진 거울이 세번 나오는데 첫번째로 나오는 깨진 거울은 송재호와 김형자 뒤를 배경으로 비춰지죠. 김성욱 평론가가 그 장면에서 깨진 거울의 상징적인 의미를 배창호 감독에게 물어봤지만 배창호 감독은 우연에 의한 소품 효과일것이라고 말하며 촬영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서울의 변두리 빈촌이지만 실제로 촬영은 광명시 철산동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원작에선 청계천 뚝방 근처가 배경으로 설정됐죠. 코멘터리 후반에 배창호 감독은 디지털로 복원된걸 보니 개봉 당시보다 훨씬 색감이 선명해진것같아서 보기가 좋다고 합니다. 1982년 개봉한 영화는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4위를 기록하며 흥행에도 성공했고 평단의 반응도 우호적이어서 배창호 감독이 이후의 차기작을 만드는데 기여도가 컸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맨 처음 상영을 시작한 메인 상영관의 시설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도 관객들의 성원이 높아서 고마웠다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