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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덕일 역사서는 재미있다. 쉽다. 긴장감과 짜릿함이 동시에 다가온다. <조선 왕 독살 사건>(다산초당) 2권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조선 역사에 대해 평소 관심 있는 사람이나. 텔레비전의 역사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볼 만한 역사서이다. 이덕일의 대부분의 책은 어려운 역사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것이다.
조선 왕 3명 중 1명이 독살당했다는 말은 조금은 황당하다. 절대 군주, 모든 것을 가진 임금,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임금을 독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덕일의 책을 읽어가다 보면 최소한 '독살당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30-40대 한창 나이에 아주 하찮은 병으로 며칠 만에 급서하는 임금들을 보노라면 의심은 더욱 굳어진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 이를테면 노론 대신들과 임금의 정치적 대결이 정점으로 치닫는 결정적 시기에 임금이 죽는다.
이덕일은 에필로그에서 ‘국왕과 거대 정당의 갈등이 증폭되었을 때 갑자기 국왕이 세상을 떠나는 방식으로 갈증이 해소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만일 국왕이 죽지 않는다면 훨씬 많은 신하들이 죽고 백성들이 죽어야 했던 시기에 임금 1명이 죽는 것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도, 어쩌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대통령과 국민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유신말기의 폭압적인 정치 상황을 생각하여 보면) 훨씬 더 많은 국민이 죽기보다 한 사람이 죽음으로써 사태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뒤에 펼쳐지는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 등을 보면 역사는 반드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아무튼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 11명이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효명세자와 소현세자까지 친다면 더욱 놀랍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특히 이 두 세자의 죽음은 안타깝다. 조선의 역사 나아가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마저 다르게 전개시킬 수 있을 위치에 있던 두 세자의 죽음은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이자 안타까움이다.
얼마 전 제22대 임금 정조가 당시 적대 정당이던 노론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수백 통의 친필 편지가 발견돼 화제가 되었다.(2009.2.10.화요일자 <한겨레> 참조) 정조는 겉으로는 노론과 대립하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심환지와 암암리에 정치적 거래를 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편지가 발견됐다고 해서 언론들은 정조 독살설 자체에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렇게 볼 개연성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정조 사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행태들을 보면 정조는 충분히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 중 ‘돌아온 일지매’가 있다. 그 일지매가 활약하던 시대적 배경이 인조 때다. 인조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고, 박안식의 소설 <소현세자>의 배경이기도 하다. 즉,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남한산성으로 도망을 가고, 결국 전쟁에 져서 소현세자를 볼모로 보내야 했던 암담했던 시기였다. 청나라에서 오랜 세월 볼모로 살면서 소현세자는 세상을 봤다. 조선이 떠받들어 모시는 명나라가 아니라 청나라라는 새로운 국가를 봤고 유학이 아니라 천주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접했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게, 새롭게 나라를 이끌 꿈과 청사진을 갖고 돌아온 소현세자는 참 어처구니없게도 급서한다. 죽은 그의 얼굴과 온 몸은 독살당한 이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가 만일 인조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아버지 인조가 아들을 독살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진실은 물론, 모른다. 세자빈 강씨 집안의 몰락을 보면, 눈물이 난다. 분노도 치솟는다. 이러고도 임금이라고?
일일이 다 거명하기조차 민망하다. 조선 역사 500년 동안 참 많은 임금들이 정적들에 의해 죽어간 것이다.(아니,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었다) 그런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마치 정글에서나 있을 법한 약육강식의 세상, 권모술수와 조삼모사의 세상, 그게 조선이었을지 모른다.(그 시대에는 다 그랬겠지만)
조선 역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러워지는 부분이 더 많아진다. 그래서 두렵기조차 한 게 역사이다. 이덕일은 이렇게 말한다. “반성 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 그렇다. 지금 2009년 현재 우리 정치는 정말 조선과 일제시대와 50년대와 60년대와 70년대와 80년대와 90년대의 반성 위에 서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 미래를 논할 수 없잖은가.
<조선 왕 독살 사건>의 제목은 섬칫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게 해 준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1, 2권을 읽으면서 편집자의 무성의함도 느끼게 될 것이다. 자꾸 눈에 거슬리는 오자들을 보면 도대체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무엇하는 곳이고 저자는 무엇하는 사람인지, 독자들은 이 책이 90쇄가 팔리도록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