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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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상자 맨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보편적인 동반성장의 기록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11년째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물론 최근에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으로 인한 어휘력 부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게중에는 어른보다 깊은 생각과 나은 표현력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아이들도 있곤 하므로, 언어가 80%정도 완성된 상태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지식을 가르쳐 남은 부분을 채워 완성해 보내는 맛이 있다. 국어를 배워야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래서 눈앞의 성적을 뛰어넘어서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대업을 이루어가는 과정에까지 언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언어는 자아를 세계에 내어놓는 통로이자 방법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언어는 한 인간을 세상과 연결하는 도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마음이 먹먹하니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언어가 '숨어있는' 세계라니. 머리를 한 대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사람을 세상밖으로 끌어내주어야하는 언어가 숨어있다니. 그런 세상을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는 그렇게 한 사람을 세상과 연결해주어야하는 언어가 숨어있는 아이들을 만나 언어를 꺼내어 먼지를 털고 세상과 이어주기 위해 아이와 함께 애쓰는 일을 한다. 아이의 언어를 꺼내고 다듬어줌으로써 아이를 성장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도 성장하는 나날들을 덤덤하게 회고해 기록하고 아이에게 전하는 개별 편지를 적는 마음이 크림치즈처럼 담백하지만 묵직하다. 이 책과 편지를 아이들은 지금쯤 작가님이 세상과 이어준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겠지?싶어 마음이 뭉클했다. 나는 언어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 작년에는 아이들에게 책 한 권씩과 편지를 써준 적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며, 아이들은 나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언어로 더 돈독하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언어가 틀어질 것을 걱정할 수는 있어도, 언어가 없을 거라는 의심을 해본 적은 없었다. 작가님은 그런 언어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언어부터 쌓아 올려 다리를 놓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표현하는 편지를 전달할 수 있다. 무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 그 편지를 받을 수 없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울컥 눈물이 나서 잠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아이는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어 부모 자식 간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집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한참을 또 마음이 먹먹했다. 당연하게도 쓰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한 장의 편지를 읽게 하는 과정이 이렇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특수한 상황들은 더더욱 개별적이고 특수하기 때문에 모두가 제각각이고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넘어서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꽤나 마음에 잔잔하고 무겁게 남았다. 매일 하고 있는 '가르치는'행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가 가끔 있었는데, 작가님을 통해 가르침이라는 행위가 가르침 받는 대상을 세상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행위라는 본질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것이 어쩌면 정말로 꽤나 값진 일이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출렁해서, 간혹 몰아치던 회의감을 지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방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을 반듯한 명사로, 놀이터를 땀내나는 동사로, 공원을 바스락거리는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도록 발견해준 작가님이 학생들의 편에 서서 바라보고 표현해준 세상에는 우리가 숨쉬듯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일상이 결핍되어있는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이 덤덤하게 묻어나왔다. 나는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을 일상처럼 덤덤하게 말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작은 세상은 톡톡 깨어져 또 다른 세계와 이어진다. 작가님의 동반 성장의 기록은 학생을 성장하게 하고, 작가님이 스승으로서 성장한 것을 넘어 작가님의 학생과 작가님, 그리고 나의 세상을 이어냈다.

작가님이 이 책을 써주셔서,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학생과 동반성장해나가고 있는 모두와 서툴지만 언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장애 학생을 주변에 둔 모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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