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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자연사 - 언어의 기원 ㅣ INU 번역 총서 이어(異語) 1
장-루이 데살 지음, 박정준.이현주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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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언어 전공자나 생태학, 생명 진화에 관련된 모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
국어를 전공했고, 학부 때부터 아이들에게 이걸 가르친 시간을 다 합치면 거진 15년 가까이된다. 생각해보면 사실 평생을 완제품 도구인 언어를 깨우쳐 이를 통해 지식을 쌓아가고 학부에서는 드디어 이 도구의 정체를 파헤쳐 설계도면을 공부해 남들보다 조금 전문가의 입장에서 언어를 보게 되었고 그 도구를 만들어 다시 완제품 언어를 도구로 만날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일을 하는 과정에 서있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남들보다는 조금 더, 언어의 도구적 중요성을 알고 있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전문가로 취급받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학자가 아닌 중고등 교수자로서, 그러니까 연구자가 아닌 기술자로서 삶에 허덕이다보니 더 깊어지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들더라도 그만한 동기가 유지되기 어렵고, 그만한 틈을 내기도 어려웠으며, 사실 내가 문득문득 가지게 되는 호기심의 근본적인 정체 또한 알기 어려웠다. 학문적 호기심이라기에는 한없이 얕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아는 고런 알량한 지적인 우월감이었을까? 하지만 문득문득 궁금한 것을 어떡해. 그러자고 대학원을 진학하자니 무엇부터 알아야할지, 내가 무엇을 정확히 딱 궁금해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까부터 언어를 계속 도구라고 지칭해왔다는 것을 눈치챘겠지만 나는 언어가 반박할 수 없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온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들은 간혹 문사철 핍박의 시대에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공기처럼 공짜로 취급받는 언어의 위상에 항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만한 학문적 바탕을 갖추지 못했다는 답답함과, 혹은 이를 자칫 인간 우월주의로 몰고갈 수 있는 여지에 대한 반박을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과도 이어져있는 갈증이었으리라.
그런 내게 이 책은 그런 갈증들을 바닥부터 차곡차곡 채워주는 그런 책이었다.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신호가 어떻게 다른지, 인간 언어가 독창적인 면은 무엇인지에서 시작해서 학부 때 배웠던 공통조어론, 언어 능력의 생물학적 정착 근거, 언어의 기원에 대한 잘못된 증거들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모아 정리해주어서 으레 한 쪽으로 편향된 학술서를 읽다보면 생길 만한 의혹들을 어떻게 알았지? 싶게 마치 대화하며 질문을 받아주듯이 차곡차곡 풀어나가주는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꽤 재미있는 교수님과 1대 1로 대화하면서 풀어나가는 수업을 따라가는 느낌이랄까!
2장은 정말로, 언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어에 대한 학술서를 쉽고 조리있게 풀어두어서 어떤 언어를 공부하든 보면 쉽고 반갑게 언어 체계에 대한 이해를 되짚어볼 수 있는 구성인 음운-단어-통사-의미론적인 언어 단계에 대한 이야기다. 언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언어 전공자가 갖출 기초 지식 정도로 언어적 논의를 할 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일 정도로 쉽게 설명되어있다.
이런 논의를 통해 드디어 3장에서는 대화행동, 정보언어, 논증, 진화, 정치 등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기능해왔는지에 대한 예시를 학술적으로 풀어나간다. 학술적이지만 체계적이라, 이미 앞에서 읽은 것들을 따라왔기 때문에 쉽고 흥미롭게 납득되는 것은 덤이다.
물론 관심사라서 그랬기도 했지만 500페이지에 가까운 학술서 성격의 책이 이렇게 쉽고 재밌게 읽힌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아주 학술적이고 원론적이어 보이는 언어의 기원을 살피는 일이, 그것이 인간 세계에 적용되어온 과정들을 학술적으로 살피는 일이 실질적인 인간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에까지 관여하는 과정을 함께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짜릿하고 섹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언어 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생태나 생물, 사회 진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더 학술적인 근거를 가지고 나름의 생각을 정립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과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꽤 구체적인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므로 꼭 한 번은 이 책을 접해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