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문법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 부유한 나라의 가난한 정부, 가난한 국민
김용익.이창곤.김태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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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흩어진 복지의 언어들을 하나의 문법으로 엮어내는 제안서.

국어교사로서 문법을 가르칠 때, 나는 첫 시간에 '책장론'을 설명한다. 책을 많이 보관하고 싶으면 한 개씩 쌓아올리지 말고 책장을 먼저 짜라고. 책장마다 범주를 정하고 쌓인 책들과 잘못 들어간 책들, 그리고 빈 책장을 파악하고 그 사이를 채워나가면 되는 거라고. 문법은 그런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학교에서는 마치 공식처럼 가르치는 문법이지만 사실은 문법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문법이 먼저가 아니라 언어의 사요이 훨씬 먼저였고, 사용되는 언어들의 공통점을 뽑아서 법칙을 만들어낸 것이 문법이기 때문에, 문법에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구멍구멍마다 학자들의 견해가 다르고, 그 중에서 일부를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수준으로 다듬어서 가르치는 것이 학교 문법이다. 그래서 문법은 사람들의 언어 사용에 따라서 살아 숨쉬듯 움직이고 변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복지에 대한 문법이다. 사회복지정책에 대해 다양한 위치에서 살피고 정책 입안에도 참여했던 실무자와 경제사회와 복지 전문가, 재정 전문가가 만나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 심도 있는 제안서를 내놓은 것이다. 국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몫이 존재하며, 각자는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만 모든 것이 1순위일 수는 없기에 '나중에'라는 말을 들은 집단은 분개하며 반발한다. 사실 모든 것이 1순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자기 몫을 주장하지 않으면 자기의 순위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정책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는 급하고 소중하지만, 결국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의 순위는 자꾸만 밀린다. 그 중 하나가 복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복지는 잘못 운영하면 밑빠진 독이 될 수 있을 만큼 뚫려있는 곳이 많다. 얼추 생각해도 현재 상황으로는 손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아서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할 것만 같고, 그렇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라는 핑계가 통할 것만 같다. 하지만 입벌리고 쳐다보고 있으면 그저 양극화의 간극이 벌어질 뿐이다. 열악한 사람은 더 열악해지고 소수의 사람들만 부유해져서 평균은 올라간다. 그 말끝에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맞물려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고용 안정성, 사회 안전망이라는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단어 하나하나만 봐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는 이 어마어마한 단어들을 엮어서 다듬어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복지의 문법'인 것이다.

이 책은 꽤나 희망적이다. 꽤 오래 전부터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사실 헬의 순환고리에 갇혀서 오래도록 고립되면 걸어나갈 방법을 잃는다. 하나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던 문제가 10가지 100가지 문제들과 엮여있어 망연자실해지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은 각자 볼 수 있는 만큼만 보고 있기 때문에 단편적인 불만이나 불안, 막연함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사회 안에서 개인들의 삶이 막연해진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사회 구성원간의 협동, 공동체에 대한 부조의 마음은 개개인의 삶의 여유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오기가 어렵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사각지대로 몰려가고 있는 지금, 이대로는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해결책이 뭔지는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제법 설득력있는 공존의 방법에 대해서 논한다. 나와 같은 경제, 사회에 대한 초심자도 이해할 수 있는 깊이로, 차근차근 '국가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방법인 정책이 문제'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현재 우리 나라가 취하고 있는 태도와 방향, 그리고 그것이 나아가야할 지향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설령 저자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자신만의 정책관과 방향을 가지고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 읽어봐야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김승섭 선생님의 책과 시선 좋아한다. 김승섭 선생님의 #아픔이길이되려면 이 비교적 마음을 먼저 공략하고 수치로 설명을 채워넣는 정책 제안서였다면 이 책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마음보다 머리를 겨냥하는 냉철한 정책 제안서라 비교독서를 추천한다. 결국 지향점은 같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괜찮아지기를 , 이를 위해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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