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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0월
평점 :
#답장이없는삶이라도 #나다운게뭔데 #세미콜론 #알에이치코리아 #에세이 #일상 #낙망 #우울 #희망 #도서제공
한 줄 평 : 오늘도 여전히, 일 분의 기적만 주어지더라도, 답장이 없는 편지를 쓰더라도, 충분히 의미있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읽는 내내 목젖이 울멍울멍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정말 뜬금없이 #매일을헤엄치는법 이 생각났다. 매일을 헤엄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실 나는 두려워서 진즉에 포기한 영역이다. 나는 스스로 조금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조금이 나를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창의적인 영역에 나를 내던지는 것을 망설인 채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안정을 얻지도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라는 제목을 한 글자씩 곱씹게 된다. 답장이 없다는 것, 삶 뒤에 조사 이라도를 붙였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라는 말을 목젖으로 울컥하는 것이 올라오지 않도록 막아끼워넣어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잔잔하고 찰랑한 글들.
그녀가 말한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는 어렴풋하게 나의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오랜만에 그녀의 생일을 매개로 안부를 나눈 오랜 친구는 내게 "포기하지 않는 언니 멋져."라고 또 고운 말을 내주었다. 원래도 참 단단하고 고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가 두려워 미처 걷지 못한 길을 튼튼하고 묵직하게 걸어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주말에 포기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도 안쓰러워서 앓아 누웠었다. "깜깜한 터널 안에 있는데, 터널이 너무 넓어서 어느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어렴풋한 빛도 보이지를 않아요." 근 몇 년간 내가 가장 많이 한 말과 생각이었던 것 같다. 대상이 미세하게 달라지기는 했지만, 늘 안정적인 고급 세단이 아니라 통영 루지를 불안불안하게 소리지르며 타고 가는 것 같은 그런, 그러나 멈출 수 없는 그런. 그럴 때면 가끔 나이든 내가, "이렇게 될 것을 그때 왜 그렇게 불안해했나 몰라요."라고 30대의 내가 안쓰럽다는 듯이, 아주 평온하게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왜냐면 아직은 나도, 답장이 오지 않는 삶이라도 아침이 오면 다시 백지를 바라보며 다시 써내려가는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책 뒤에 써있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지망해온 사람의 낙망에 대한 보고서"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왜냐하면, 그는 나처럼 아직도 지망하고 낙망하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하는 사람에게는 답장이 오지 않으면 따져물을수라도 있지, 삶이 내게 답장을 보내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따져 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보내야만, 언젠가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이야기. 희망하기 때문에 낙망할 수 있는 이야기. 삶은 사람보다 조금 더 박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답장은 더 귀할 수 있겠지만. 혹은 모르겠다. 그 답장 없음이 답장이라 하더라도, 끊임없는 희망과 낙망을 견디다보면 아마 다른 방향으로라도 답장은 오지 않을까. 신춘문예에서 계속 답을 얻지 못하지만 산문으로 충분히 이뤄내고 있는 작가님처럼.
이 책을 끊임없이, 답장이 오지 않는 삶이라도 지망하고 낙망하며 어느 따스한 아침을 그리며 추운 아침의 공기를 헤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한 편 한 편 잔잔하고 시적인 언어로, 과정의 삶을 위로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아마 그저 보내기만 하는 삶의 허전함을 어루만져주면서, 한편 어느 날 당신이 삶으로부터 한 통의 답장을 받는다면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선망으로 당신을 안아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므로.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첫장부터 만난 보르헤스의 말은 많은 시의 탄생의 이유를, 그리고 우리 삶의 많은 나쁜 일들의 소용을, 그리고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계속해서 써나가야할 이유를 알려준다. 그럼으로인해서 우리는 밭은 숨을 뱉으면서라도, 혹은 긴 숨을 몰아쉬는 날이라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