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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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질병의 문화적 모형을 신체화하는 겁니다."

이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화병'은 공식 용어로도 홧병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불의질병'이라고 번역했는데, 꽤 재미있고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hwa-byung 하면 무슨 뜻인지 확 와닿지 않으니까. 한국에 다른 나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 말그대로 정착한 화병이 있듯이 어느 나라에서는 체념 증후군이, 어느 나라에서는 그리지 시크니스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게 너무 당연해서 '왜?'라는 의문을 가져보기 어려웠다. 왜냐면 말그대로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듯이 당연하게 접하는 문화 속에서 접하게 된 질병이기 때문이다. 숨을 왜 쉬는지 생각하지 않듯이, 화병이 왜 생기는지 생각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체념증후군이나 그리지 시크니스 같은 병은 꽤 낯설고 희한하게 느껴졌다.

'질병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회적으로 패턴화되는 행동이다.' 라는 것은 #김승섭 교수님의 #아픔이길이되려면 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아픔이 길이되려면이 정말 와닿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 사회 각 계층이 겪는 세부적인 화병의 이야기라면(해당 책이 화병을 다루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한국의 심인성 질병 등을 본 리뷰에서는 화병으로 통칭하기로 하였다.) 이 책은 거기에 문화인류학적인 내용을 더해 범주를 훨씬 넓혀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89p. 우리는 분위기나 정서적인 행복, 심지어 성격까지 신체화한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확신에 찬 자세로 선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기분이 저조할 때와 행복할 때 앉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몸짓을 보고 그들의 의견과 태도, 분위기를 예측한다. 소통할 때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몸짓을 사용한다.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 미소 짓고 동의한다느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몸짓은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에 굉장히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여러 학교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교라는 것은 작은 사회라서 그곳이 어디에 위치해있느냐, 구성원들의 성비가 어떠하냐, 학교 문화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학교'라도 너무나도 온도차가 크게 발생했다. 이걸 똑같이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식'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달랐고, 그에 따라 영향을 받는 학교의 구성원들인 교사나 학생들, 학부모들의 마인드도 너무나 달랐다. 어떤 학교에서는 괜찮았던 행동들이 어떤 학교에서는 너무나도 이상한 행동이었고, 어떤 학교에서는 금기됐던 행동들이 어떤 학교에서는 권장되는 행동이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굉장히 교육적인 행동일 수 있는 것이 어떤 학교에서는 비호감적인 행동이었고, 당사자인 나도 어디에서는 행복하고 이게 천직이다 싶었는데 어느 곳에서는 미쳐버릴 것 같아서 빨리 탈출하고 싶기도 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다양한 학교 문화를 접해서 그것이 온전하게 내탓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만나지 말았어야하는 인연처럼 만났던 학교에서는 병을 얻기도 했었다. 머무는 기간이 짧고, 환경의 특수함을 알았기 때문에 체념 증후군이나 그리지 시크니스처럼, 혹은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타죽어버리기 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었지만 특정 공동체의 '상식'이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군가에게 심인성 질병을 짐지우거나 그것을 짊어질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할 것이다.

책의 뒷면에 적혀있다. 때로 질병은 우리가 선택한 삶이 우리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것이 반드시 개인의 나약함이나 개인이 극복해야할 대상으로만 읽힌다면 그것또한 집단의 '상식'이 저지르는 집단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심인성 질환이 사회에 유행하거나 특정 계층 혹은 특정 조건에 놓인 사람들에게 주로 발병한다면, 상식의 관성을 깨고 과감하게 '왜' 를 물어야 할 것이지 질병 당사자들을 희생자로 만들고 말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왜'를 묻고, 인류학적 관점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이 책의 가치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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