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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버리기 - 초등교사의 정체성 수업 일지
송주현 지음 / 다다서재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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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정말 쉽게쉽게 읽혔다. 작가님의 말과 글은 신기할 정도로 쉽고 재밌었다. 교사들끼리는 농담으로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 같고 중학교 선생님은 중학생 같고 고등학교 선생님은 고등학생 같다고 하는데, 정말로 초등학생 눈높이의 화법을 완벽하게 구사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감탄했다. 게다가 모드가 세분화되어있어서 맡는 학년별로 맡은 아이들에게 친구들의 모습을 한 어른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정말이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의 초등학생을 기르는 부모님들에게는 필독서로 권할 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식이 없는 나도 하나하나 격하게 끄덕거리며 읽었다. 특히나 아이들의 정체성을 길러주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문답이나 혹은 지도 방법 면에서 저자의 방식은 매우 탁월해서 지금부터라도 배워두면 내 자식, 남의 자식, 심지어 성인인 본인에게까지도 적용할 만한 부분이 꽤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격하게 끄덕거리며 읽은 이유가 또 있다면 읽으면서 꽤나 마음이 부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서 그 아이의 성장 배경을 헤아려보게 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았고, 게중에는 어려서부터 사회성이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해서 여전히 친구가 별로 없는 나의 모습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랬구나.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 생각보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현재의 내 모습이 형성되어오기까지의 과정들이나 과거 나의 모습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랬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왜 내가 그간 꾸준히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했는지를 좀 깨달은 느낌이랄까? 저자님처럼 완성된 어른이 못 되어서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고, 함께 성장해주는 아이들에게 새삼 고맙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반 아이들의 이런 면들이 어떻게 형성된 것이겠구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제라도 내 내면 아이 정체성도 부드럽게 안아주고 단단하게 길러주는 유지보수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굉장히 고질적으로 막연하게 고민해오던 문제에 대해 좀 명쾌하게 고민의 포인트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착한 아이'는 교사로서, 특히 담임 교사로서 고마운 존재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쯤 된 아이가 마냥 착하기만 하면 대학교 가서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되지 않을까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죽하면 나는 예전에 졸업한 학교 학보사의 졸업 선배 칼럼 연재를 요청받았을 때 '착한 호구들의 세상을 꿈꾸며'라는 제목의 글을 쓰기도 했었지만, 그런 세상은 사실 유토피아가 아닌가. 그렇다고 애들한테 나쁜 아이, 재수없는 아이, 싸가지 없는 아이가 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방향도 사실 굉장히 애매하다. 물론 교육적이지도 못하고. 그런데 막연하게만 고민하던 그 문제에 대해서 본문과 작가의 말을 읽으며 '정체성'과 '존중'. 그 균형을 잘 잡아주면서 착한 아이도 나쁜 아이도 아닌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아이로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갈등을 권장한다는 파트에서는 매우 공감했는데, 학교는 작은 사회니까 그 안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이 꽤나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해도 어릴 때 망해야 작게 망하지 않는가. 깨지고 부숴지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먹을수록 망하는 스케일이 커진다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곤 하는데, 그렇다면 아이들을 억압하고 착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갈등을 권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게 하는 것이 옳다. 고등학생쯤 되면 좀 늦은 느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 아이니까. 조금은 내가 할 몫이 남아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일화들에서 도무지 초등학교 1학년들 같지 않게 교사를 포함해 서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예의를 차리며 혹은 선생님을 도와주려는 모습들은 너무나 맑고 귀여워서 힐링도 되었다. 그런 맑고 귀여움이 투명하고 단단한 수정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굳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의 공동 양육자인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며 일면 우리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혹은 초등학생보다 더 자란 아이들의 내면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시절의 내면아이를 다독일 수도 있다면 이 책은 그런 책임을 진 우리 모두의 필독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