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는비밀이없다 #한스미디어 #미스터리 #소설 #사회 #문제적소설 #성폭력 #성범죄

화차, 올드보이, 도가니....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난 영화들이다.카프 문학 <홍염>도 생각난다.
이 소설은 재혼을 한 한 남성의 새 부인(?)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변호사인 남성은 하필이명 옛 친구 아들의 성문제에 관련한 합의를 진행해주고 그날 부인은 사라진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꽤 많은 복선이 뿌려지고, 의심의 각도가 여러 갈래로 뻗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능적이지만 찌질하고 추한 모습들도 여럿 보여진다. 얼핏 보면 그 사건들이 너무 얄밉거나 찌질해서 하마터면 그것이 중요한 단서인 양 혹하지만 점차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고 마음아프다. 정말 소설으로서의 전개가 탄탄하고, 결말로 치달아가는 긴장감이 쫄깃한 소설이니 미스터리나 추리, 사건 사고에 관한 소설이나 문제적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완성도 높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성범죄의 여러 가지 모습들, 그리고 다양한 피해자들이 다양하게 다친 삶을 살게 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선하고 정의로워보이는 사람들조차 자연스럽게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혹은 성범죄를 은폐하는데 동조한다. 혹은 그 커다란 사건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어린 소녀들에게 '그루밍 성범죄'는 그들의 삶의 기억과 방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는 한 집안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로 자라나는 아이에게 가해진 무차별적인 가스라이팅과 말도 안 되는 성범죄는 결국 그녀가 미치도록 분노하고 광범위한 복수를 다짐하게 한다. 그 굴레 안에서 친구를 꺼내주려고 무게를 함께 지고자 했던 친구마저도 어린 소녀였으므로 그녀 또한 그 무게로부터 도망쳐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거운 진실, '너'만 조용히 하면 된다는 그 진실은 결국 '너'로 인해 폭로된다. 그나마 고구마는 아닌 결론이다.

그러나 폭로된다는 것이 상처의 치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인 '너'의 삶을 만신창이로 짓밟으며 '너'만 조용히하면 모두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너'에게 강요하는 말도 안 되는 행태는 '너'의 폭로로 망가지지만, 결국 그녀의 삶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해자를 망가뜨림으로 인해서 그녀의 삶마저도 무너뜨린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의 삶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기억을 왜곡하기도 하며, 기억 속에서 어떤 순간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섣불리 용기를 냈다가는 창창한 미래나 합의라는 명목하에 이 모든 책임을 오히려 전가당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의도가 포함되었겠지만, 대상을 착각당해 '더듬기'만 당했다고 해서 우신핑이 성범죄를 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엄연히 미성년자에게 술탄 음료를 마시게 한 쑹화이구의 친구들, 그리고 대상을 착각했든 아니든 강간 미수에 해당했던 행동을 한 쑹화이구는 억울해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억울해했다. 마치 추궈성의 아들 전샹이 억울해하는 것처럼. 사실상 가장 유효한 복선은 이게 아니었을까 싶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도, 성범죄로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 당신이 아무런 생각 없이 가해자의 편에 설 때에조차.

그런 사건을 자신의 친구 아들 일로 변호했던 판옌중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정 반대 입장의 누명(?)을 일부러 뒤집어썼던, 그러나 끝까지는 함께하지 못했던 아내 우신핑의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깨닫기는 했겠지? 길지 않다면 길지 않았던 삶들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성추행범들의 눈빛과 기분나쁜 웃음이, 장난이랍시고 친구들에게 성적인 모욕을 아무렇지 않게 뱉던 초,중학교 교실의 불편했던 시간이 나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지웠을 그런 시간들이 문득 떠오르며, 그러나 그런 존재들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인정하기도 싫어할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