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우개 좀 빌려줘 ㅣ 사계절 1318 문고 136
이필원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지우개좀빌려줘 #이필원 #사계절 #청소년소설 #책추천 #청소년 #도서제공 #책스타그램 #책추천 #사계절교사서평단
'인간들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한다고 들었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이 혹등고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무지개빛으로 해사하게 웃는 혹등고래. 사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룰 수 없었던, 이제는 무엇을 하고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첫사랑은 혹등고래였을지도, 혹은 또 다른 무엇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지우기 어려운 두근대는 장면들을 남기고 가버린 존재는 돌고 돌다가 내 곁을 스쳐갔다. 그게 꼭 인간이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 같은 고래라면 이쪽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과의 악몽 같은 기억보다 고래와의 꿈 같은 기억이라면.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데.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겠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어떨 때는 인간적인 의심을 내려놓아야하는 이야기로, 어떨 때는 인간적인 의심의 촉을 바짝 세워야 하는 이야기로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상상력을 이어간다. 짝사랑이 혹등고래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생체 냉각 기술이 우리를 먼 곳에서 수입해오는 활어회처럼 대하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 남 떄문에 혼자라고 느끼고 분노와 절망을 키워가고 있던 아이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호랑이의 이야기......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동화들이었다. SF라기에는 전래동화 같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동물들의 친구가 될 수도, 명령을 받을 수도, 혹은 누군가의 먹이가 될 수도 있는 존재인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발상은 동양화와 같기도 하다. 그 안에서 성장하는 청소년의 모습은 더없이 건강해보인다.
청소년들의 성장 이야기이면서 어른들의 동화일 수도 있는 이야기. 현대판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 이필원 소설집 #지우개좀빌려줘 의 상상력을 함께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도 지우개 좀 빌려줘,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