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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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버스 영화의 포스터를 완성해나가는 것 같았다. 제목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네 편의 사랑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이어서 만든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단편 소설들이 다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설들을 꿰뚫는 키워드를 뽑는다면 퀴어와 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둘의 공통점을 세상이 그어둔 선을 넘어서 '나' 스스로의 감정과 결정에 오롯하게 스스로를 맡기는 것에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내게는 사실 낯섦과 익숙함 사이를 오갔다. 아마도 소설들은 '소수자'에 힘을 줘서 소리치기 보다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내면의 소리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고 부드럽지만 힘있게 손을 꼭 잡듯이 넘겨주고 있었다. 퀴어도,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던 사람도, 아주 멀쩡한 줄 알았지만 혼외자를 여럿 만들고 책임지지 않은 인간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고 태어나서 마음으로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의 여성 애인을 받아들였던 사람이 있었고, 다자연애를 꿈꾸는 사람도, 그것을 온몸으로 밀어내는 사람도, 컨트롤되지 않는 애인과 아들 대신 서로에게 마음을 의지하는 여성들도, 힘든 퀴어 연애로부터 도망쳐서 딸을 키우며 여성학을 공부하면서도 계속 애증의 상대를 그리워하는 여성도.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아주 일상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린 표고버섯 과자맛처럼. 살아보지 못한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반드시 자극적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사실 소수자의 삶이 아니라도 타인의 삶은 영원히 살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수자의 삶은 더욱 멀게 느낀다. 그저 우리는 그 어떤 타인의 삶도 살 수 없는 존재일 뿐인데. 복식 호흡을 하듯이 한 장 한 장 읽어나갈수록 나는 살아볼 수 없는 타인의 삶에서 요즘 '나'에 수렴하고 있는 나의 생각을 두드리는 언어들을 읽어냈다.

P.14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인간관계에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P.77 내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을까? 나의 어떤 부분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행복ㅎ지기 위함일 뿐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적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안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주기를, 이때는 이렇게 하고 저때는 저렇게 하라고, 그러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P.81 "요가는 타인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야. 지금 너보다 나은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게 바로 네가 말하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P. 138 그래. '나'라는 존재는 어느 누구에게서 발생한 게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 속해있지도 않았어.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지. 마치 그날 바라본 친어머니의 눈처럼, 그 속에 담긴 하나의 영혼처럼, 나도 그저 존재하고 있어. 내가 잃어버린 퍼즐 조각은 나의 친부도 친모도 아닌, 나 자신이었어. 내가 찾아야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

우리는 오직 '나'로 산다. '나'가 되기 위해 '나'로 산다. 그 어떤 타인의 삶도 우리는 살아볼 수 없다, 관조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게 다수자든 소수자든 그 무엇이든 다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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