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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와 애니 ㅣ 창비세계문학 12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백낙청.황정아 옮김 / 창비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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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과 역사를 사랑해서 전공해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국어를 가르칠 때도 가르치는 것이 단지 한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세계와 역사이기를 바라며 가르쳐서 늘 진도가 느린 편이다. 어차피 시험 한 번 보고 까먹을 작품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는 세계를 읽고 이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반대로 나도 작품을 보다보면 그 작품을 둘러싼 세계관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해보게 된다. 정보를 찾는 건 나중이라도, 내가 찾은 단서들로 꿰 맞춘 세계관에 대해서. 그래서 요즘 한국 문학에만 너무 매몰되어있는 스스로를 반성했었다. 사실 한국사를 좋아하고 한국 문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지만 문학과 역사에는 세계도 들어있는 거니까. 그래서 요즘 역덕후 시즌2 찍으면서 세계사 책들 많이 읽고 듣고 하면서 세계문학에도 관심을 좀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썬킴의거침없는세계사 #25가지질병으로읽는세계사 #깃발의세계사 등등을 읽고 들으면서 세계사 갬성에 좀 더 젖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창비 시크릿 서평단을 만났다. 뭐부터 읽어야할지 모르겠어서 세계 고전을 엄두도 못 내고 있던 내게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랜덤으로 도착한 책은 D.H로런스의 패니와 애니였다. 뒷면에 크게 적혀있는 것은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D.H.로런스 인간의 성과 육체, 관계를 탐구한 로런스의 대표 단편선'이라는 말이었다. 나도향과인가....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영국의 이효석과 같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읽어본 바만 가지고는 '성과 육체'를 어마어마하게 드러냈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당시의 기준으로는 좀 더 노골적이고 주체적이고 발칙한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거나 혹은 심지어 죽어버린 한 남성의 육체를 두고 임신한 부인과 그 남성의 어머니 사이에 도는 팽팽한 긴장감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수식어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향보다는 이효석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성과 육체'가 주라기보다는 자연속에서 사는 서민들의 삶에는 에로티시즘이 당연하게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을, 그리고 좀 더 그 본능에 가까운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일단 흥미로운 것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나보다 싶은 거였다. 우리 나라의 농부들이 저기서는 광부들일 뿐, 서민들의 삶은 거기서 거기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고부관계까지도.... 저 나라도 엄마들이 아들걱정하는 거 유난스럽고 시월드 유난스러운 건 똑같았나보다....싶었다. 특히 '국화냄새'에서는 아, 저 나라도 국화가 암시하는 바가 죽음인가?했다가 아 우리 장례식이 서양식이지..하는 생각이 들었고, 며느리에게 잔소리하거나 질투하는 시어머니 모습을 보며 와 저 나라도 비슷하네 싶었다. 신기했던 점은 저 나라는 좀 결혼 시기가 늦은 느낌이었을까..? 싶었던 것이 패니와 애니. 와중에 서민들의 삶이 감자먹는 사람들 같이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거 같은 것도 신기했다. 뭔가 동질적이고 이질적인 느낌이랄까.
에리히프롬인지 알랭드보통인지 둘다 아닌지(오 진짜 기억 안 나는데 누군지 알면 댓글 좀 달아주세요....) 누군가 그랬다. 결혼이라는 게 사회적 계약이라고. 그것은 높은 계급(?)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고. 지배계층은 머리와 계산으로 결혼을 정략적으로 선택하고, 그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생산계급으로 내려갈수록 진정하게 마음으로, 혹은 아랫도리로 사랑을 하고 자녀를 생산한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결혼은 계층의 이동 수단으로 여겨질 때도 있고, 혹은 계층을 공고히 가르는 수단이 될 때도 있다고. '목사의 딸들'에서 그 내용은 꽤나 적나라하게 두 자매의 삶과 생각, 그리고 목사라는 계급의 탈을 썼지만 가난한, 지위와 소득이 불일치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딸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말하자면 자꾸 길어지는데,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나보다 싶으면서도 우리의 풍속화를 보다가 서양의 유화를 보는 느낌으로다가 사람들의 삶을, 역사책의 한 단어에 돋보기 대듯이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책을 재밌게 읽었다. 기회가 되면 이런 식으로 랜덤으로 똑 떨어지는 고전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아직 뭔가 고를 엄두는 안 나는데, 서양 고전은 좀 더 읽어보고 싶다. 흥미돋는다. 좋은 기회를 주신 창작과 비평사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