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서 말하기로 - 심리학이 놓친 여성의 삶과 목소리
캐럴 길리건 지음, 이경미 옮김 / 심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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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c.orang 에서 진행하는 독립출판에 대한 4회차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막연한 마음으로 참여했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리고 출판이라는 체계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무언가 명확해지고 있어서 신기하다. 강의 중에 #책나물 대표님께서 '좋은 글감'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셨었다. 내내 곰곰히 생각하면서 돌아왔는데, 그에 대해서 나는 단기적으로는 잘 팔리는 컨텐츠요, 장기적으로는 '고전'이라는 말을 붙일 만한 오랜 생명력을 가진 컨텐츠가 좋은 글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에서 말하기로" 그런 의미에서 진심 여성 심리학의 경전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내용을 다룸에 있어서도 제목 등의 기획력이 책의 존재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기존의 "다른 목소리로"라는 제목보다 "침묵에서 말하기로"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된 것 또한 매우 인상적이고 의미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이 글은 좋은 글감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꾼 글감에 대한 이야기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 역사의 논의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까지 모두 끌어안고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역사의 흐름과도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목소리', '말하기'는 존재의 의미와 근원을 밝힌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당연한 듯이 침묵을 강권당하는 것은 사회구조가 보이지 않는 천장을 만들어두고 벼룩을 가두어두어 그가 뛸 수 있는 높이가 원래 얼마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짓밟는 일과 같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벼룩은 아마도 자신이 더 높이 뛸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그 투명한 하늘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에 따르면 인간은 다정함과 배타성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성을 통해 종을 유지해왔다. 그런 일이 인간 종 안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계급의 차이로, 성별의 차이로, 인종의 차이로, 신체 장애 여부 차이로, 성적 지향의 차이로, 종교의 차이로 등등 다양한 차이를 빌미로한 배타성을 가지고 알량하게 선긋기를 시전해왔다. 그게 최고조에 이르렀던 것이 '모더니즘'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해체주의의 역사와 함꼐 피억압자들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도 존재의 우열을 중심으로 한 인종 차별, 홀로코스트, 투표권의 불평등 등이 숨쉬듯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왜 아테네에서는 귀족 남성만의 민주주의가 실행되었는지, 왜 유명 철학자 등의 역사 속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남성이며 여성의 목소리가 감쪽같이 실종되었는지, 우리 나라에서도 어째서 당연하게 과거 시험은 남자에게만 자격이 주어졌는지, 천재 소설가 김명순은 어째서 지질한 문인들의 조리돌림에 미쳐 죽어갔는지....

그런 차별을 눈치채고 침묵을 깨트린 목소리가 교육학을 공부하며 영혼없이 외우던 콜버그와 길리건의 그 길리건 선생님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의 짜릿함은 부끄럽지만 신선했다. 마치 역사속 인물을 눈 앞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이래서 공부할 때 서사가 있으면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저 외울 이론의 하나로 치부했던 길리건의 도덕성 모형이 사실은 당연하게 배제당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이었다는 것에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낀세대로서, '여자애 치고' 되바라지고, 말이 드센 사람 취급을 꽤 받아왔었다. 밀려드는 시대의 파고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을 거 같지만 몇 년 전에 고딩들이 여자 선생님이랍시고 '드센'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좀 상심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드세다니.)지만 나는 꽤나 별나고 드센 사람 취급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고 있고, 또 길리건 선생님의 연대로 인해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고, 그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 내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사회 속에서 배제되었던 목소리들이 용기내어 하나씩 켜지는 촛불처럼 켜질 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촛불은 흔들릴지언정 모이고 모이면 횃불처럼 커질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의견을 나누고 발전적으로 다투며 종국에는 연대하는 삶이 오면 좋겠다. 이상하게 할 말이 너무 많고 편수를 나눠서 각자의 제목으로 써야할 글이 뒤죽박죽 생각나 목이 매고 말이 엉키지만, #더파이브 를 읽고도 느낀 것처럼 침묵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당연한 듯 강요되던 침묵을 눈치채고 깨뜨려준 이 책이 우리의 목소리를 밝혀 인간의 역사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여성주의의 경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지침서로서 이 책을 반드시 곱씹어 읽을 필요가 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중앙에 세우지 못하고 거칠게 떠밀려 변두리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며 서성여야했던 주변인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책이다.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인간 관계나 언어는 개개인의 행위 양상으로 정해진다기보다 구조주의적인 압박이 되어서 오기 때문에 그렇게 구조적인 차별을 견뎌야했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지침서와 같으며, 이는 우리가 어떤 의미로든 어떤 층위에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역지사지하고 내가 떨어질 세상에까지의 낙차를 줄여놓는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하는, 혹은 소외된 세상에서 힘껏 연대하기 위해 부르짖을 수 있는 언어와 목소리를 가질 당위에 대해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고전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일방만 목소리를 가진 외침은 대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자들에 대한 발견이 계속되고 그간 없었던 목소리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그간 그들의 존재를 지워왔던 것에 대한 책임의 통감이라는 것을 인식해야하는 오늘날, 우리는 몇십 년 전부터 지워진 목소리들을 발견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던 캐럴 길리건 선생님의 목소리를 곱씹어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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