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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평점 :
때로 어떤 사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이 책은 추천사들부터 하나하나 마음을 때려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또 대차게 끄덕이게 되는 책이었다. 또 늘 고민해온 인간사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고,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사고의 모순까지도 조금은 명확한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게 하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또한 역사를 사랑하기에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은 허구보다도 더 허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아픈 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왜 침묵하지 말아야 하며 어느 방향으로 소리쳐야할지를, 때로 그 외침이 무용했다고 생각했다면 이만큼 긴 시간을 걸쳐 드디어 관심가질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된 진실을 마주함으로서 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재미’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 책은 흥미로운 대상인 잭더리퍼를 흥행시킴으로써 희생자를 두 번 죽이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죽을 만했던 사람으로 치부해버리는 말초적 본능에 가까운 괴랄한 취향을 뛰어넘을 만큼 흥미로운 내용이다. 흥미로 만들어낸 괴물 #잭더리퍼에 대한 관심과 우상화를 깨부수는, 미시사 속 이름 모를 희생자 마녀들의 개별서사는 사실은 우리가 누구나 본능 속 잭더리퍼보다 오히려 다섯 여성의 입장에 처할 수 있었음을, 우리는 누군가를 해치는 사람이 되기보다 해쳐지는 누군가가 되기 더 쉬운 입장임을, 게다가 죽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럴 만해서 죽은 사람이 되기는 더 쉬운 사람임을 명확히 제시한다. 또한 우리의 목소리는 광끼어린 흥미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쪽으로 나아가야 함을.
사람들은 가해자가 죗값을 충분히 받는 세상을 꿈꾼다.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그러지 못하는 법에 분노하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사람들이 때로는 가해자가 동일한 가해행위를 했다고 했을 때 죗값을 매우 주관적으로 매기기도 한다. 똑같이 사람을 죽였을 때 천인공노할 살인마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그럴 만했다며 서사를 애써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스타가 된 살인마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그의 스타성에 묻혀 서사를 잃거나 혹은, 그러니까 왜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풀었냐는 타박을 받기도 한다. 고작 그게 죽어도 쌀 이유가 될까.
그럴 만해서 죽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 많이 양보해서 있을 수는 있다고 치자. 사실 아직은 세상에 100%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수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든지 그러면 본인의 목숨도 소중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직 이 부분은 나도 좀 더 깎여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아직은 그렇다. 그런데 그게 매춘부라서? 혹은 노숙자라서? 혹은 남자인 보호자가 없는 여성이라서? 그게 연쇄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할 만한 충분한 이유와 서사가 될 수 있는가?
#권김현영 선생님의 추천사중에 ‘남자 보호자 없는 여성들은 잠재적으로 언제나 매춘부 취급을 받으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라는 부분은 생각보다 아프게 다가온다. 왜냐면 이것은 작금의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여자 사장님 혼자 하는 카페에 와서 어슬렁거리면서 추파 던지는 말도 안되는 작자들의 이야기를 티비에서 본 적이 있다. 말도 안 된다고? 아니 말과 생각을 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일이다. 또한 심심치 않게 남편을 잃은 여자 사장이 하는 음식점에 단골로 오는 손님들이 단골을 핑계로 성희롱이나 추파를 일삼는 일은 말해뭐해 입아프게 흔하다. 그들이 쉬워보였냐고? 아니 그냥 ‘주인’이 없는 사람 취급 받기 때문이다. 당장에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어간 비혼 여성에게도 비슷한 취급을 하는데 뭐. 그놈의 ‘주인’의 존재를 부정해도 그런 취급을 받는데 ‘주인’이 있다가 공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더 그러는 것이겠지. 그놈의 것. 그놈의 ‘주인’ 딱지를 뗀 지가 언젠데, 호주제 폐지한 지가 언젠데. 그렇게 생각보다 사람들의 생각은 제도에도 훨씬 뒤떨어져있다. 없다고 말하지 말고 돌아봐라. 정말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하는 데에 130년이나 걸린 것이다.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매춘부를 죽였다.”는 흥미 위주의 망상 속에서 희생자들의 서사를 걷어내기까지, 그들이 마녀사냥 당한 억울함을 풀어주기까지.
내가 어렸을 때는 맞을 만하니까 맞겠지하는 말이 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맞을 만하면 네가 때려도 돼?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맞을 만하다는 것은 누가 정해? 기준이 뭔데? 하고 물을 수 있는 시대가 와야하지 않을까. 그만큼의 인식이 변화하는데 1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수많은 사람의 외침이 필요했다면 앞으로는 그 문제의식에 더 공감하고 함께 소리쳐서 그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할 말이 너무 많아 끝도 없어서, 그냥 일단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꼭 읽으셔야 하는 책이다. 여성 주의에 관심이 있든 없든, 특히나 혹여 내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게 꼭 권하고 싶다. 당신이 생각지도 못하는 세상에 당신도 언젠가 떨어질 수 있을 테니까. 그 세상은 생각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니까. 그래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바꿔놓으시라고. 말초신경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두가 존재의 존엄정도는 지킬 수 있는 세상에 살 수 있게 해야하는 거라고.
끝으로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이라는 어렵지도 않지만 제대로 추모되어 불리워지지도 못한 이름들을 눌러 적으며, 이 책의 추천사 중 일부를 재추천하며 일단 마무리하겠다. 내용은 정말이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서 한 문장을 뽑기보다 그 서사를 두고두고 인용할 만한 내용이라서.
-이 책은 그들을 추모하는 책이다. 그리고 나머지를 꾸짖는 책이다. 이 책이 쓰이기까지 130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었겠느냐고. #가디언
-화이트 채플에 숨어 살던 비겁한 살인마의 기록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을 제대로 살 기회,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이 될 기회”를 잡으려 노력했던 다섯 사람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삶이 있었다. #강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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