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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것들의 도시 ㅣ 일인칭 4
마시밀리아노 프레자토 지음, 신효정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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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잊힌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다. 나는 어려서부터 뭘 잘 잊어버린다. '아 맞다'를 달고 사는 사람. 분명히 가방에 넣은 기억이 나는데 그 많은 짐들 중에서 꼭 필요한 것만 잊고 온 탓에 집에 들어와서 침대 위에서 까꿍?하는 물건을 보고 맥이 풀리는 그런 사람. 그래서 최근에 써야할 것들은 제 자리로 돌려놓기보다 주변에 잘 두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현재를 차지하는 그것들에 집중하는 동안에 나의 한 시대였던 것들이 마치 낮과 밤처럼 잠시 내 기억의 뒤편으로 숨어버리기도 하곤 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늘 주변이 산만하고, 그게 싫어서 고쳐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그런 사람. 그러다가 불쑥불쑥 잊었던 것이 생각나면 쉽사리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꼭 찾아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써놓고 보니까 진짜 이상한 사람 같네....
그래서 나는 요즘 대답하는 물건이 너무 좋다. 폰이랑 워치가 서로 찾아준다든지, 삼성띵즈가 삼성 세계관 속에서 버즈나 폰이나 태블릿이 대답하게 해준다든지.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또 나를 잊지않아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물론 나의 흑역사스러운 모습이나 기억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모습들은 동화 속 '샤'에 버리고 거울도 주지 말았으면 싶지만, 그래도 나의 존재가 그들의 복작한 현생 속에서 작은 틈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고맙다. 이 동화를 보고 나니 나는 잊혀진 도시로 보내지지 않고 적어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 마음속에서는 한 공간을 할애받은 것이었다. 그럼 기왕이면 좋은 모습으로, 곱게 기억되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동의한다. 수십 년을 살면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들이 내내 그 강도로 나를 감싸고 있으면 순간순간이 숨막힐 것이다. 강렬한 감정들은 작은 칩처럼, 혹은 도서 대출카드처럼 색인을 붙이고 차곡차곡 서랍안에 들어간다. 근데 생각해보면 진짜 잘 둔다고 뒀는데, 그때는 색인을 잘 붙여서 잘 보이게 넣어뒀는데 현생에 치이다보면 그게 잘 못 둬서가 아니라 그 색인들이 너무 많아져서 찾기 힘든 것이 될 때가 많다. 검색이 되기도 하지만, 안 되기도 하니까. 갑자기 김초엽님의 #관내분실 이 생각난다. 하지만 아주 잊은 것은 아니다. 어? 그떄 그 거, 어디있더라? 하고 갑자기 떠오를 때면 그 생각에 종일 사로잡혀있을 때도 있다.
이 동화는 그 잊혀진 것들이 상하지 않도록 돌보아주는 까마귀 이야기이다. 내가 잠시 잊은 것들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샤'라는 도시에 머문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에 또 읽고 싶었던 책 중에서 힘들었던 기억들과 함께 사는 법에 대한 책을 본 기억이 난다. 이 기억은 아직 샤로 가지 않았군...
사실 이 동화를 세 번쯤 읽었는데 내가 주제를 잘 파악한 건지는 조심스럽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은, 어른들의 동화이다. 근데 그래서 좋다. 온갖 상상력으로 점철된 동화가 그래서 닫힌 결말로 가는 것은 교훈성이 강하다. 근데 청소년기만 되어도 머리가 커져서 남의 말 안 듣는 어른들이 어디 동화책이 빤하면 읽고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이 동화는 몇 번이고 더 읽어볼 만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이 서평은 3번 읽은 버전의 서평이고, 앞으로 감상이 추가된다면 내용을 추가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언급해둔다. 그러라고 양장본 커버에 좋은 냄새가 나는 종이로 되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일단 동화는 그림체부터 상상력까지 몽환적이다. 아, 이거 동화니까! 하는 생각을 놓지 않게끔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력을 동원하고, 그림이 도와주는 것이 다행스럽고 좋다고 느껴질 만큼 비약적인 상상력을 통해 전개된다. 그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예술 같아서 책 한 권이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와중에 어른의 삶을 사는 나는, 대체 이 까마귀는 노동시간이 얼마인가, 대체 언제 쉬는가.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가, 그는 행복한가? 따위의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잠시 휴식이 찾아오는 타이밍은 있었지만 그리 길어보이지는 않았고,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그는 돌보는 것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돌보기 위해 돌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돌보는 것을 돌보기 위한 돌봄이라니. 정말이지 유령도 돌보고 두려움도 돌보고 달팽이도 돌보고 모든 것을 다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잊힌 모든 것들은, 망가지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망가지지 않은 채로 잘 있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새로운 손님을 함께 돌보기도 한다. 또 교사로서 눈에 띈 것은 까마귀의 돌봄 방식이었다. 알들을 돌볼 때도, 두려움을 돌볼 때도 다수에 따르지 않는 알이나 두려움에게 굳이 다수를 따르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까마귀는 훌륭한 보호자이고, 또 훌륭한 교사였지 않을까. 그래서 잊힌 것들은 외롭지 않지 않았을까. 거울을 보고 한참을 머물면서도, 잊힌 사람들에게까지 거울을 가져다주는 까마귀. 다친 행성이 찾아왔을 때도, 겉만 훑어 치료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픈 가시까지 빼주어서 아픈 것들을 토해내고 나아서 날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그는 대체...
그러나 기억의 폭풍을 맞이하며 잊힌 것들이 모두 날아가고 나서, 까마귀가 쌓아온 샤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우물 속에 있던 잊힌 사람들까지 모두 날아가고 나서(이제 생각해보니 기억의 폭풍은 데이터베이스 같은 뭐 그런 것이었을까?) 보살피던 것이 모두 그 도시를 떠났다는 것에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마저 도시를 떠나 기억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단지 잊힌 것들을 맡아두었기 때문에,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신의 품을 떠나는 것이 더맞는 것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보호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은 마지막에서, 샤로 떠난 주인공이 까마귀의 뒤를 이어 우리가 잊은 것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언제든 잊힌 것들을 기억해내면 그것을 그 세계로부터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는다.
나는 좀처럼 내용에 대한 서평을 잘 쓰지 않는데, 서평이 내용스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고 생각한 내용을 공유함으로써 상대편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서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내용을 이야기한 것은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답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내용을 말했다고 한들, 이 책은 내용만 보기보다 그림과 함께 보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책이기 때문에 좀 더 마음 편히 책의 메시지에 대해서, 같이 읽으신 분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 읽으신 분들, 저랑 생각 같이 나눠주셨으면 좋겠고 안 읽었으면 읽고 와서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모처럼 신선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독서의 기회 주신 #동양북스 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