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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의 세계사 -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
팀 마샬 지음, 김승욱 옮김 / 푸른숲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깃발의세계사서평단 #깃발원정대
바야흐로 상징의 시대다. 은어를 비롯한 상징들로 사람들은 마치 공항에서 피켓을 들고 나의 가족을 기다리듯 애타게 소집단을 형성하고 거기 속하고 싶어한다.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을 배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비대면 시대에서 고립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소속감을 찾아 애쓰되, 약속이 없으면 만들고 싶지만 약속이 생기면 취소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처럼 소속감을 찾아 헤매되 마치 유닛처럼 가짜 얼굴을 하고 모이고 반쪽짜리 소속감을 가진 후, 책임을 회피하고 사라진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깃발을 만들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데서 알 수 있고, 깃발을 가슴에 품되 내보이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다. 마치 깃발과 같은 상징으로 팀을 나누지만, 그러나 깃발을 내보이는 순간 그 무게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다. 그 무게를 대리로 짊어져주는 사이버렉카에 열광하고, 확증 편향에 빠져들었지만 본인이 그의 구독자라는 사실은 드러내지 않는 것. 역설적으로 나는 거기에서 상징의 시대에서 깃발의 무게를 본다. 깃발을 내세우고 몸에 두르는 순간, 우리는 그 무게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창인 올림픽에서는 깃발의 무게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이뤄지는 전쟁이 스포츠가 아닐까. 각국의 깃발을 머리나 옷에 작게 부착하는 순간, 그는 단순히 깃발을 달았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의 '우리 편'이 된다. 가끔은 깃발을 단 내 편에 좀 더 마음을 준 나머지 조금 이성을 잃기도 하고, 혹은 어제의 내 편이 깃발을 바꿔달면서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경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며 커다란 깃발을 몸에 두르고 휘날리면 사실은 일면식 없는 남인데도 마치 그가 내 가족인 것처럼 사람들을 크게 환호한다. 깃발의 힘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핫했던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세 번째 국기를 단 빅토르 안은 그간의 서사를 모두 부정당할 정도의 큰 타격을 입었고, 린샤오쥔은 스스로 국기를 바꾸었다. 이렇게 깃발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을 결집하게도, 혹은 배타적이 되게도 할 명분을 갖는다. 그렇기 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우리를 국가로 상정할 때, 국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천 조각 하나에 담긴 이념의 우주' 정확한 말이다. 학생 기자로 시위 현장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었다. 거기에는 온갖 집단들이 '나 왔소' 하는 깃발을 내세우고 있었다. 존재의 증명이 깃발로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나선 단과대학들도 자신들의 존재를 깃발로 증명했다. 1명이 와도, 100명이 와도, 깃발은 그들의 출석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였고, 그 자체로 집단을 대변했다. 어렸을 때 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보드 게임 중에서 여섯 개의 변을 가진 별 모양의 땅을 세 가지 색깔의 깃발로 정복하는 게임이 있었다. 말 그대로 정복의 의미다. '깃발을 꽂는다'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그 게임의 실사판이 아닐까. 이기는 쪽 사람들은 그곳에 깃발을 꽂고 기뻐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 하등 상관없는 곳이라도. 마치 독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다수의 국민들이라도 독도에 어떤 깃발이 꽂히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전쟁이 소모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잔인하고, 희생을 담보로 얻기에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것들을 가지고 싸운다. 깃발은 그것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덮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방적인 희생이 전제되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인류가 멸망하기까지 사람들은 국가든 이념이든 무엇의 깃발이든 그 아래로 모여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갈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그 깃발 한 장에 수많은 목숨을 건다. 그 천 쪼가리 한 장에. 심지어 모바일로 본다면 천 한 올도 들지 않는 픽셀 덩어리에.
#깃발의세계사 는 그런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봄직한, 심지어 굉장히 친절한 책이다.
자신의 비판적인 능력을 믿는 독자라면 맨 앞의 해제를 보지 않고 책을 읽은 후 해제를 읽어보기를 바라고, 처음부터 감동하고 읽어보고 싶다면 해제부터 읽어보기를 바란다. 아마 책을 읽기 전부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편견들, 혹은 필자의 입담을 넋놓고 따라가다보면 범할 수 있었을 오류들을 짚어놓은 해제를 보며 한 번 더 깨어나는 느낌을 받을 수있을 것이다. 지성을 말하는 책에서 이 말조차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한 층 높은 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문학 책에서는 반드시 다루어주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해제도 비판적 시선으로 읽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사람의 역사에서 '상징'은 어이없게도 보이지도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삼국 시대에 거의 처음으로 중앙 집권 국가들이 국가의 참모습(?)을 갖출 때, 율령을 반포하고 종교를 인정하여 육체와 정신을 속박하는 일을 선행한다. 그 모든 눈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상징으로 내보이는 것이 깃발이다. 집단의 정체감,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사고방식. 그것은 소속감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에 따르면 배타적 개념을 형성하여 결국 내 집단에 '다정'하고 타 집단에 '잔인한' 행동 양식을 만들어낸다. 다른 종을 멸종시킬 만큼. 그래서 #깃발의세계사 18p에는 깃발에는 분쟁과 적이라는 개념이 상정되어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새삼스럽게 충격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 아래 '분쟁을 줄이고 조화, 평화, 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현대세계'라는 말이 문득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 책을 각잡고 읽기 위해 몇 가지 반복해서 들었던 세계사 책들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숨쉬듯 전쟁이 일어나고 국경이 계속 바뀌며 식민지의 깃발이 꽂히는 세계는 아닐지라도, 한반도에 유래없는 평화가 와서 전쟁이 소설과 영화 속의 무엇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더라도. 우리도 여전히 핵전쟁의 가능성에 노출되어있고, 테러 위험에 놓여있으며, 1,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어이없는 이유를 명목으로한 무기 소모전을 관망하고, 여전히 어떤 국가들은 반쯤 속국처럼 취급 당하며 그 국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것을. 한 쪽의 편에 서는 것이 깃발을 보이며 이루어지는 순간 더 큰 전쟁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또한 국가뿐 아니라 국가 내의 세력들도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깃발을 갖는 순간 이것이 공식화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무게가 곧 책임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나치의 십자가가, 욱일승천기가 제국주의 폭력의 상징처럼 배척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홍콩은 독립 투쟁을 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미국은 가끔 무기 재고를 털기 위한 전쟁을 자행하지 않나.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도 결국은 깃발이다.
마음만 먹으면 193개 국민 국가의 사례를 다 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필자의 말처럼, 내 서평도 한도 끝도 없어질 기미가 보여서 1탄을 끊는다. 이 책은 생각할 여지도, 할 말도 아주 많을 책 같다. 2탄 서펑을 쓰기 위해서, #밀리의서재 로 듣던 #25가지질병으로읽는세계사 와 #썬킴의거침없는세계사 를 좀 더 들으면서 봐야겠다. 이 서평에 굳이 해시태그로 언급한 것은 같이 읽으면 독서 효과가 배가 될 책이다. 오디오북으로 들은 위 두 권은 종이책으로도 꼭 다시 읽고 싶다.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른 책들을 훑고 돌아와서 이 책을 읽으니 생각의 지평이 엄청나게 넓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의 저 멀리까지 더 깃발을 꽂으며 나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몇 개의 세계사 책들과 함께 #깃발의세계사 를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남의 피를 흘리지 않고 얼마든지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그 희열을 함께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너무 많은 책이니까! 일단 끊고 2차 서평 쓰러 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나도 처음이야....
좋은 책을 만들어주시고, 깃발 원정대 티켓처럼 책까지 제공해주시어 내게 세계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깃발을 꽂아주신 푸른숲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