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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의 대표적인 철강도시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직장에서 후한 임금을 받았고
생활은 윤택했고 미래는 밝았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철강산업의 몰락은 분명
미국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철강산업의 육성
일본과 독일의 자국 철강 산업에 대한 보호장치,
하지만 미국만은 철강산업을 버렸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시작이자 결과였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과 서비스업만으로 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공중누각의 믿음.
"일본과 독일은 늘 자기에 공장에 돈을 쏟아 부었다. 늘 새로운 인프라에 투자했다.
그렇지만 펜스틸은 단 한 푼도 공장에 투자한 적이 없었다.
몰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독일과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들은 아직도 엄청난 철을 만들었다.
반면 미국의 회사들은 파산했다."
그 미국의 철강산업과 더불어 몰락해가는 철강 노동자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직장을 찾아 먼 지방의 철강소에 취직을 하고
어렵게 구입한 주택 부금을 마련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객지에서 홀로 고생을 하며 돈을 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사고, 아버지는 휠체어 신세를 진채 가족의 짐이 되고만다.
힘든 삶에 지친 어머니의 자살, 똑똑한 누나의 대학 진학,
병든 아버지를 버리지 못해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고향에 남은
우리의 주인공 "아이작".
어느 날 그는 마침내 아버지를 떠나 먼 곳으로 가서 대학에 진학하자고 결심하고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친구인 포를 설득하여 집을 떠난다.
하지만 동네 언저리 버려진 철강소 사무실에서 불량배들을 만나고
위험에 처한 포를 구하기 위해 그 중 한 놈을 살해한다.
하지만 현장에 온 경찰은 피묻은 포의 재킷과 거구인 그의 덩치를 고려하여
포를 범인으로 착각하고
포는 망설임 끝에 아이작 대신 감옥에 들어간다..........
미국의 몰락을 예안한 몇 권의 경제서들을 읽고
심상치 않은 서프라임의 붕괴와 도무지 살아날 것 같지 않은 경기침체를 지켜보던 찰나
소설은 경제서 못지 않은 미국의 영락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결국 부의 양극화를 낳고
약간의 임금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을
구걸하는 거지나 마약을 파는 범죄자로 만든 건 아닌지,
낫은 원가를 위해 철강업이라는 제조업의 대표주자를 서슴없이 버린
미국의 선택은 소설의 한 구절처럼 몰락은 아닌지....
"자신에게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는 계속 존재할 수 없어.
특히 이런 큰 나라는, 결국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그럼에도 소설은 경제서가 아니다.
작가의 다독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괜찮은 기독교적 냄새도 언듯 언듯 풍겨난다.
인간의 오만함,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하찮음,
그에 대한 인식이. 인간은 신에게서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할 권리를 부여받은 대단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인식이.
"강은 인간이 강을 바라보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저기서 흐를 터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리 우리가 산과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잘라고 결국 산과 강은 자신을 치유하지."
그리고 소설은 미국 소설답게 휴머니즘적으로 끝을 맺는다.
그래도 인간이라는, 그래도 사람이라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희망.
그것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품게 마련이다.
나도, 너도.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약간 미소짓게 되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