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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레트 ㅣ 작은거인 24
클레르 클레망 글, 정지혜 그림, 류재화 옮김 / 국민서관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는 농장 일을 끝마치고 지평선을 조용히 바라보곤 했다. "할아버지, 뭐 봐?" 할아버지는 운을 떼었다. "해님은 들녘에 지고, 긴 다리, 목 내밀고, 저 멀리 여왕님들 지나가네. 걸으면서 꿈을 꾸는 여왕님들."
어느날 할머니는 잠이 든다. 영원히...할아버지도 죽었다. 시골도, 돌체비타도, 시도...모두 죽었다. 할아버지 심장은 심하게 얻어맞은 것이다. 커다란 멍이 든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할아버지는 말도 하지 않는다. 멍하니 한곳을 응시한채로... 그래서 룰레트의 엄마는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맡기려 하지만 도무지 롤레트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감옥같은 곳에 할아버지를 가두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기차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버려진 한칸짜리 기차에 아무도 모르게 할아버지를 옮긴다. 한 일주일쯤 그곳에 계시면 할아버지가 정상처럼 돌아와 양로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집에선 할아버지가 없어진 것을 알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엄마는 슬퍼하고 경찰은 들락거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할아버지는 양로원에 가는 것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만난 노숙자 푸푸 아저씨와 파리 아줌마를 만나게 되고 할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지낸다. 룰레트는 집에서 몰래 먹을 것을 나른다. 어느날 숙제를 하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말을 하게 된다. 파리 아줌마는 꼼이라는 자식과 떨어져 사는데 꼼에게 생일편지를 보내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앉는다. "항상 생각한다. 해가 떠서부터" 라고 생각을 해내자 갑자기 할아버지는 "새가울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립소. 나는 물 없는 땅. 당신 없는 나는 완전한 내가 아니오. 당신을 내 팔로 안고 싶어. 따스한 살, 부드러운 향기를 맡고 싶어. 당신이 웃는 것을 보고 싶어. 당신이 우는 것을 보고 싶어. 내가 위로할 수 있게. 따스한 손길로, 부드러운 말들로, 꽃으로, 나비로, 달팽이로, 개미로. 당신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반짝이는 기쁨의 눈빛을 볼 수 있게. 내가 숨을 내뱉을 때 내 숨결은 당신에게 가오. 가끔 그걸 느끼지 않아? 여린 입맞춤처럼.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당신, 내 사랑, 영원히, 영원히...." 라고... 할머니가 너무 그리웠던 할아버지는 그렇게 속마음을 다 쏟아내고는 흐느껴 운다. 그 기차에 있는 동안 할아버지는 말을 하게 되고 이틀 더 머무른 후에 집으로 가게 된다.
어린 룰레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낭만을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그런 양로원에서 지내다가는 병이 나을 수도,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는 걸. 룰레트 눈에 양로원은 노인들이 가로수처럼 줄지어 멍하니 죽음을 기다리는 감옥 같은 곳이다. 필요한 시설이 모두 갖추어진 곳일지는 몰라도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엔 무언가 빠져 있는 곳이라 느낀 것이다. 이 책은 무언가를 말해주기 보다는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련하고 눈가가 촉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