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존 키건 지음, 정병선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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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휴전국가'다. 인권과 자유, 평등에 대한 온갖 요란한 구호와 논쟁들이 활개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휴전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은 이 행성에서 가장 후진 나라들 중 하나다. 휴전상태인 까닭에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한국은 얼마 쯤씩 일그러져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전쟁에 대한 잠재적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공포는 지구깡패 미국이 수행하는 거룩한 전쟁들--베트남전과 걸프전,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이, 미국과 첨예하게 맞서는 북한과의 한반도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합리적 논리적 추론 때문에 더 증폭된다. 이러한 공포는 어떤 이들에게는 '좋은 세상'을 위한 조건일 수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살맛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공포의 수치와는 반비례하게,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주 형편없다. 사실,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기란 지극히 어렵다. 그것은 사랑 혹은 정치만큼이나 정의내리기 힘든 말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건 옳지 않다. 완벽히 알 수는 없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더 잘' 알 수는 있다.

'살아있는 군사 역사학자들 가운데서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존 키건이 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가 내린 정의를 보자. "전쟁은 어떤 집단적 목적을 위해 행하는 집단적 살인이다." 간단해 보이는 이 문장에서 우선 살펴볼 것은 전쟁의 본질이 '살인'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그 끔찍한 범죄의 주체가 '국가'라는 거대하고 모호한 실체라는 이유 때문에 전쟁의 범죄성은 대개 은폐된다. (물론 그러한 '은폐'의 과정은 극도로 복잡하고 교묘한 조작이 수용자의 집단심리와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다음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집단적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전쟁국들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 가장 중요하다. 전쟁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수없이 다양한 전쟁의 양태들 속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정치경제적 원인을 볼 수 있다. "전쟁은 재정적 정서적으로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그래서 부유한 나라들도 이용 가능한 기술적 인적 자원을 최대 잠재력까지 끌어올리며 수행하기에는 벅찬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이 가난한 나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적들, 통제력이 무너진 국가의 파벌들에게는 값싸고 치명적인 사없이 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전쟁의 목적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전쟁의 양태라 할 수 있다. 에너지 자원 확보라는 가장 보편적인 목적을 가진 전쟁이라 해도, 수많은 개인들이 청동검을 휘두르며 치른 전쟁과 버튼 하나로 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전쟁은 너무나 다르다. 이렇게 볼 때, 이전 시대와 오늘날의 '전쟁 공포'는 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존 키건은 핵과 같은 대규모 살상 무기보다도 오히려 소총과 같은 개인화기로 수행되는 소규모 전쟁으로 죽어가는 인류의 수가 더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비핵화 선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각국의 정부가 나서서 그러한 무기의 판매 및 무역을 적극 규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냉전 시기 내내 지속된 공포의 균형이 핵전쟁을 예방해 주기는 했지만 우리가 핵전쟁을 영원히 피해갈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 나는 낙관적이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무모한 종(種)이지만 합리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세계 대부분의 주권국이 핵무기를 영구히 보유하지 않겠다는 비확산 조약에 서명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IAEA를 통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핵화를 선언했지만, 정작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 특히 미국은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선, 확대하고 있고 또 그것을 통해 무역 상대국들에게 파렴치한 경제적 압박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또 파키스탄 등 몇 몇 나라는 그 조약을 무시하고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심지어 이스라엘은 미국의 은밀한 지원 아래 핵무기를 보유하기까지 했다.(<<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참조) 과연, 키건의 말처럼 인간은 합리적인(그 말의 어원적 의미에서 계산적인) 존재인가 보다. 미치광이 이론을 통해 전지구를 전쟁 공포에 사로잡으며 미국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경제적 이익이니 말이다.

핵전쟁과 같은 어마어마한 사태를 대하면 머리와 가슴이 한없이 무력해지고 멍해진다. 전쟁이 뭔지, 또 왜 일어나는지 알아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기도 하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건 결국 인간의 이성인데, 전쟁의 강력한 후방 지원부대로 전락한 미디어가 인간 이성의 계몽을 철저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쟁을 막지 못해도, 그래서 죽임 당하더라도, 왜 죽는지 알고 죽는 게 좀 더 나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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