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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글쓰기를 두고 내공이니 진검승부니 따위의 무협지 말들로 짐짓 비장한 체 하는 이들이 있다. '말'은 그저 '말'일 뿐, 나의 눈물과 너의 웃음, 너의 피와 나의 땀에 맞닿아 있지 않다. 언어가 현실을 담아내고 혹은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결코 언어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언어는 그 자체로 몸을 가진, 따라서 눈물과 웃음과 피와 땀을 가진 현실존재다. 그러니 언어의 눈물에 젖어보지 못한 자가 글쓰기 내공을 말하고 말의 피범벅에 질척거려 보지 못한 이가 글쓰기 진검승부를 떠들어 대는 건, 우습지도 않다.
말은 누구나 할 줄 알지만 제대로 말하는 이는 드물다. 글은 누구나가 쓸 수 있으나 '읽히는' 글을 쓰는 이는 더더욱 귀하다. 언어를, 활자화된 문자와 말된 말, 즉 의미 되어진 소리라 생각 않고, 사람 '사이'에서 인간-세계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여긴다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사태는 오늘날 그저 '5.18'로 축약되어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5.18'이란 말을 한다/쓴다는 것은 그 시간 그 곳에서 피 흘리고 눈물 쏟았던 뭇 인간들과 그 사건과 상황을 우리-나와 너-의 존재 속에 각인시킨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반복과 습관은 인간성의 가장 위험한, '보이지 않는 적'이다. '무심코' '반복해서' 쓰다 보니 정작 그 '사건'과 '사람'은 사라지고 말만 남은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말들이 마치 유전자 변형 감자마냥 마구 쏟아져 나오는 세계는 처리할 길 없는 '言시체'들로 뒤덮여 있는 지도 모른다.
공부 또한 그렇다. 글된 말과 무수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책'을 통해 공부라는 행위는 이루어진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공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무심코 말하듯, 무심코 공부하는 행위는 무가치하다. 아니, 惡하다. 내 공부가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 주고, 그를 어떤 상황에 처하게 만들지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공부는 결국 공부라는 이름에 합당치 못하다.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공부'다. 아니, 그저 머리를 굴리는 '짓'이다.
'너'야 어찌되건 말건 내 공부를 통해서 내 배부르고 등 따숩게만 된다면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리 해도 된다. 다만 기억하라. 너와 '같은' 공부를 한 누군가를 통해 네 배가 터지고 네 등이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하는 공부'는 '몸으로 하는 반성'이다. 피떡이 되도록 맞아보거나 눈 앞이 흐릿해질 때까지 벌을 당해 본 이는 몸으로 하는 반성이 얼마나 절실한 지 알 거다. 말 안 들으면 개패듯 패야한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는 짓이, 내 삶이 그러했을 수도 있었을 무수한 '너'들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알아야 한단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렴 어때 난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이에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걸 상기시켜야 겠다. 이 책 <<몸으로 하는 공부>>는 '몸으로 하는 반성'의 첫걸음을 떼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