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붕괴 대원동서문화총서 21
조지프 A.테인터 / 대원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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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극단의 시대>>라는 책이 있다.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그 제목이 참 섬뜩하다 느꼈다. 이 제목의 현실성을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한 시간 짜리 뉴스를 띄엄띄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온갖 사건과 폭동, 테러, 분쟁, 한마디로 난리들이 '극'을 달리는 세상 아닌가.(뉴스를 포함한 미디어 자체도 그러한 난리의 한 주역임을 말해두자.) 그런데 이러한 난장판 세계에서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세계가 곧 멸망하고 말 거라는 종말론적 분위기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재난영화들이 보여주는 '가까운 미래'의 세계는 모두 폐허다. 광속과 광란의 문명이 붕괴돼 버린 황량한 세계에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이크는 북부 우간다의 가장 혹독하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는 종족이다. ...식량과 물이 턱없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협동이나 사회적 공유에서 누릴 수 있는 이득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크족의 생활공간에는 사회적 조직이 끼여들만한 여지가 거의 없다.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진 이크족 사람들은 대부분의 활동을 독자적으로 한다. 먹을 것도 각자가 조달한다. ...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형제나 친척 사이라고 해도 누가 배를 곯는다고 해서 도와주는 법은 없다. 형제나 일가친척이야 굶어죽건 말건 내 입이 우선이다. ...아이들은 세 살까지만 엄마가 최소한으로 돌볼 뿐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한다. 엄마는 아이가 일단 세 살을 넘기면 매정하게 보살핌을 끊는다. ...아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들판을 헤매고 다닌다."

<<문명의 붕괴>>의 저자 조지프 테인터는 "이크족의 생활상을 지구 규모로 확대한 그림", 즉 '홉스의 세계'가 재난 영화들의 주된 시나리오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것은 "지나치게 과장되기는 했지만 과거에 무너진 문명들의 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원제가 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인 <<문명의 붕괴>>는 "한계수익감소"라는 원리를 가지고 '복잡한 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사태에 대한 보편이론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붕괴에 대한 기존의 설명틀-자원의 고갈, 새로운 자원, 재난, 상황에 대한 불충분한 대응, 다른 복잡한 사회들의 존재, 침략자, 갈등/대립/무능/, 사회적 기능마비, 신비적 요인들,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 경제적 설명-을 하나하나 실제 사례들과 대조해가며 그 장단점 및 한계를 상술한 후에 저자는 한계수익감소의 원리가 붕괴를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설명틀임을 논증하고 있다. 요컨대, 복잡한 사회는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한계수익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감소하게 되는 까닭에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이렇다.

1. 인간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2. 사회정치적 체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유지된다.
3. 복잡성이 증가하면 단위 비용도 증가한다.
4.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으로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면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면 먼저 붕괴에 대해 알아보자. 붕괴란, "일정한 단계 이상으로 확립된 정치사회적 복잡성의 수준이 급격하고 현저하게 상실"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복잡성이 급격히 해체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잡성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인간이 이런저런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에너지(자원)가 필요하게 마련이고, 에너지의 분배와 관리를 위해서 조직이 생겨나게 된다. 이성적(계산적)으로 행동하는 인간 집단은 보다 구하기 쉽고 효율적인 자원을 우선적으로 사용할 것이고 당연히 그런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점차적으로 "조달, 처리, 공급, 판매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자원을 이용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의 필요성 때문에 복잡성은 점점 증가하게 된다. 이 과정을 좀더 자세히 보자.

"복잡한 사회는 단순한 사회보다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1인당 투입되는 에너지도 당연히 높다.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연결망도 복잡해진다. 처리되는 정보의 양도 늘어나고 정보의 흐름은 점점 중앙으로 몰린다. 생산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전문가의 수도 불어난다. 이러한 유형의 복잡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소규모의 채집 생활 집단이나 농경 생활 집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투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조직체계를 유지하는 데 투입되는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예산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늘어난다."

따라서 "한 인구집단이 복잡성에 얼마나 투자하고 거기서 얼마나 이익을 얻는지를 공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한계수익감소에 대한 문제다. 저자의 한계수익이란 용어는 경제학의 '수익체감의 원리', 혹은 '한계생산성'을 변용한 것인데, "수익체감의 원리는 경제학자들이 '법칙'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의 규칙성과 예측가능성을 가진 보기 드문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한계수익감소의 '법칙'도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농업과 자원생산은 물론이고, 정보처리, 관료조직과 전문화까지도 포괄한다.

그렇다면 복잡성이 증가하고 한계수익이 감소한 사회는 모두 붕괴하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국가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복잡해져 있는데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지프 테인터는 '호각체제'를 이야기한다. "붕괴는 체제와해의 정치적 공백을 너끈히 채울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을 때만 나타난다. 그런 경쟁자가 있을 때에는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 호각체제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이들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외부 경쟁자가 없을 때만 붕괴가 발생해서 이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한마디로, "붕괴는 권력의 진공상태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것은 이전 역사 속의 '붕괴'가 아닌 인류의 총체적 종말이라 할 수 있는 '공멸'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불기둥이라 찬양하는 핵이 그러한 공멸의 가장 직접적 수단이 되겠고. 맨해튼의 백인 거부들의 삶이 이크족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면, 다시 또 묻게 된다. 과연, 인류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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