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1
오사카 미에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시절. 원제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올 2월까지 불문학도였던(지금도 여전히 마음은 불문학도지만) 나에게 '벨 에포크'란 말은 19세기 중반에서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프랑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박물관이 탄생하고 제 나름의 소장품이 생겨난 이 시기는 그들에겐 '좋은 시대'였다(보통 프랑스 관련서에서는 '벨 에포크'를 '아름다운 시절'로 번역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 제목으로는 잘 어울린다.).

오사카 미에코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서른 전후로 설정해놓고 이들의 현재 삶을 다양한 변주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이들 나이 서른이 인생에서 아름다운 시절이란 얘길 하고 싶은가 보다. 왜 굳이 서른일까? 라는 질문엔 글쎄……, 주인공(모두들 주인공이랄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대표를 뽑아야 한다면) 키레이의 대사처럼 어른의 세계와도 10대 정도의 어린 세대와도 소통 가능한 나이이기 때문이라서……? 한번 추측해본다.

많은 분들의 찬사에 걸맞게 오사카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잘 구현해냈다. 깔끔한 연출, 담백한 그림체, 그럼에도 풍부한 인물들의 표정은 작가가 우리네 인생 얘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일 뿐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고도의 숙련가임을 짐작케 한다. 그 '기술적인 면' 가운데 특히나 높은 점수를 주고픈 부문은 원근법의 기막힌 사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보여주려는 회화야 말로 진정 대단한 예술이라는 마스터 키튼의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이렇게 해서 벌써 들먹였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2차원 속의 3차원은 평소에는 정공법으로 지극히 자연스런 광경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다가, 인물의 심리상태를 쫓을 필요를 느낄 때면 원경과 근경의 극도의 대비를 통해 이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해 단 한 장면만으로도 징한 울림을 이끌어낸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에피소드마다의 분량과 여기쯤에서 <팍>하고 터져준다는 조절은 전체 이야기를 하나로 보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산한 작가의 탁월한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겠지.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관계의 발전단계를 어디에다 그래프로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된다. 뭣에 쫓겨서, 마감에 맞추려고 비약하거나 쓸데 없는 얘기를 집어 넣는다거나 한 흔적을 찾긴 어렵다.

이런 괜찮은 만화를 놓고 괜히 어떻게든 단점을 끄집어 내려는 노력은 결코 필요 없지만, 한없이 아름다운, 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 같은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정말 괜히 《지뢰진》의 이이다 형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싶어진다. 내겐 이 세상이 썩 괜찮지 않고 나 살고 있는 지금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시절이라 생각돼서일까? 그렇다고 키레이에게 태클을 시도하면 안 되겠지. 그녀는 열심히 살고 있으며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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