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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자고 이 책을 양장본으로 만들었을까? 비앙의 소설이 번역되었다는 사실―오래전 『물거품의 나날』이 번역된 사례가 있으나―은 한국적 토양을 고려할 때 꽤나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너희들 무덤에…』가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로 포장돼 나온 점은 다소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인종갈등에 대한 과격한 해법을 보여준달 수 있는 이 소설은, 구미지역에서 말하는 열차소설, 즉 무료함을 달랠 요량으로 역사 가판대에서 사 들고 기차에 올라타, 후루룩 읽고 난 뒤 선반에 두고 내리는(집에 가져가도 무방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는), 딱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지닌 작품―작가도 이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되는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플롯, 평이한 심리 묘사, 시점적 한계를 극복하는 뻔한 해법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프랑스 문단의 화젯거리는 됐을지언정 세계문학계에 끼친 영향은 그저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세계문학계에 반드시 어떤 영향을 끼쳐야 좋은 소설이란 의미는 아니다).
비앙의 음악만 알았지 ‘그’라는 인물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던 나는, 과거 그의 사진에서 약물에 절어 광채를 잃어버리기 전의 쳇 베이커를 떠올리곤 했다. 비슷한 분위기에다 늘 트럼펫과 함께였던 까닭이다. 책 말미에 옮긴이가 친절하게 덧붙인 설명에 따르면, 그는 억지로라도 트럼펫을 불어야 했는데, 이는 류마티스성 심장병에 대한 의사의 권유였다. 작년 말 뜬금없이 개봉한 루이 말의 영화 「마음의 속삭임」에서 주인공 소년이 앓던 것과 같은 병이지 싶다. 결국 심장병으로 세상을 등지긴 했지만, 음악을 하는 동안에도 그에게는 특유의 삐딱함이 있었다.
허나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면, 이 소설에는 정말 별 게 없다. 하드보일드를 향한 끈적끈적한 집착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읽어서 뭐할까 싶다. 그래도 나는 새로 번역된 『세월의 거품』을 읽을 계획이다. ‘이게 겨우 보리스 비앙이야?’라고 단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속삭임’ 때문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