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쯤 읽고 작가와의 북토크를 하고(보고) 지금 다 읽었다.90년대의 독자들은 이 책이 시원하다고 했고현재의 독자들은 진희의 성숙함이 안쓰럽다고 한다.이는 당시와 지금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현재도 당시에도 이 소설의 문법이 통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성숙한 여자아이의 시점이라는 점에서 위기철 『아홉살 인생』,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두 소설의 남자아이와는 다르다.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내용을 잊을 때쯤, 내 책에 대한 강박이 줄어들 때 다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