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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단 하나, 사랑 ㅣ 발타사르 신학 시리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김혁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2월
평점 :
안녕하세요~ 가톨릭출판사 캐스리더스 7기 1월의 도서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남겨진 단 하나, 사랑』 입니다.
이 책은 고유명사가 많고 철학자 신학자들이 다수 등장해서 처음엔 어렵게 느껴질 수가 있는데요, 책 소개 문구인 「발타사르의 ‘신학적 미학’을 통해 만나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읽혀집니다. 미학이라는 것이 예술 작품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철학으로 이야기하는 학문이듯이, 신학적 미학이라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책이겠구나 생각하시면 이 책에 대한 기본틀은 다 잡으신겁니다.
그렇다면 신학의 근거로 철학을 가지고 온다면 다시 중세로의 회귀일까? 그리고 신앙은 믿음이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지식적으로 접근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을 지식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의아하게 여기던 부분이었습니다. 발타사르는 책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철학이나 인간적 학문으로는 절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적인 내용으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데 완전하지는 않지만 철학이나 심리학이 어느 정도는 이끌어주는 역할은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철학안에서 인간은 존재의 심연에 대해 자신을 근거로 알 수 있는 바를 찾아낸다. 실존에서는 자신을 근거로 살 수 있는 바를 끝까지 살아낸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생각이나 삶, 앎이나 행동에서 인간의 자기 이해가 지닌 초월론적 전제 속으로 해체되어 버린다면, 그리스도교적인 핵심은 말살되었다고 할 수 있다. (p.82-p.83) 》 지식으로 아무리 이야기해보려 하지만 절대적 신의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지 못합니다. 《 사추덕의 모든 차원과 여기에 하느님과 연관되는 관계의 뛰어난 방식들이 모두 자체적으로는 도달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척도 위에 세워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이때 사추덕의 심오한 의미는 무의미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보이는, 철학을 통해서는 볼 수 없는 초의미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P.224)》
그렇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구약에서의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시기도 하기에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하시어 벌주신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또 생길수도 있습니다. 《 하느님의 분노로 작열하는 심연을 열어젖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심연을 여는 것과 하나로 묶여있다. (p.153) 》 심판은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시기에,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지옥의 바닥까지 가셔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 구원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는데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책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하느님 사랑이란 그리스도의 사랑, 새 계약이요 영원한 계약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 동정으로서의 사랑’, ‘ 기꺼이 받아주는 너그러운 개방성’, ‘겸손의 마음가짐’, ‘반항하지 않는 부드러움’, ‘인내하는 끈기로서의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참을 수 없는 동료 인간을 극복하고 견디어 내며, 하느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에 용서한다. (p.218) 》 왜 참을 수 없는 동료 인간을 극복하고 견디며 사랑하라고 하실까요? 《 이 사랑이 구약 성경 전체에 걸친 인간 교육의 우선적 목표점이다. 하느님을 닮은 마음이 되게 하는 교육 말이다. (P.219) 》
어려워서 울며 시작했다가 웃으며 나오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남겨진 단 하나, 사랑』 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릅니다. (1요한 4,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