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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3월
평점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대로 사세요.” 라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민이 깊어집니다. 나는 과연 복음적인 인간인가,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나는 과연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라고 하느님께서 가톨릭 출판사에 DM을 보내셨나봅니다. 가톨릭출판사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서전 『희망』을 보내주셔서 희망이 가득한 책 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신앙을 살아왔으며, 궁극적으로 어떻게 복음을 실천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개인의 삶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이야기이자,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을 희망적으로 제시하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문득 "누가 이렇게 글을 잘 쓰셨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이름을 다시 확인하며 "아, 맞다. 교황님의 자서전이지" 하고 되새겼지만, 다시금 "진짜 이 글을 교황님이 직접 쓰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교황님께서 젊은 시절 인문학 교사로, 문학을 가르치셨던 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이 참 맛있습니다. 물론 이 책은 번역서이기에 번역팀의 역할도 컸을 겁니다. 하지만 원문의 깊이와 흐름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교황님과 공동 저자인 카를로 무쏘의 필력이 돋보였습니다.
책의 도입부는 1927년,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향하던 '이탈리아의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프린치피사 마팔다호의 침몰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당시 많은 가난한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떠났습니다. 교황님의 조부모님도 그 배를 타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음 배로 미루셨고, 그 덕분에 교황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 듯한 사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교황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세계 전쟁으로 피폐해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성장한 교황님의 어린 시절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훗날 교황님의 신앙과 사목적 비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맥락과 연관지어 교황님은 책의 곳곳에서 전통의 계승에 대해 여러차례 언급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지켜보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셨고, 에페소서 4장 1-6절을 인용하시며 겸손과 온유, 너그러움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신앙을 가르침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방언처럼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중심에는 교황님의 신앙적 뿌리가 된 로사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로사 할머니는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하셨지만, 교황님께는 가장 위대한 신앙의 스승이었습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어린 시절 이웃에 살던 가난한 이들과 격 없이 지내셨으며, 그들과 훗날 대주교가 된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셨습니다. 교황님은 빈민가에 사는 이웃들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목자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 교황님께서는 국가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두셨습니다. 실종된 자녀들을 찾기 위해 싸우던 이들을 돕다 목숨을 잃은 에스테르와의 우정을 통해, 교황님께서는 억압받는 이들을 돕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교황이 되신 후에도, 군사독재 시절 희생된 이들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적인 부분 중 하나는 교황님께서 교회를 수직적인 권위로 보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수평적으로 보신다는 점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가난한 이, 동성애자, 여성, 사회적 약자 누구든 교회의 사랑 안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교황님의 신앙이 이론이 아니라 삶의 실천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희망』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삶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보고, 그 속에서 신앙을 체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이 결국 교황님의 삶을 관통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삶의 체험들이 바탕이 되어 네 개의 회칙과 수많은 교서를 통해 복음적 메시지를 전하셨고, 희망의 신학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책을 읽으며 신앙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단순한 낙관이 아닙니다. 희망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하느님께 기대며 나아가는 힘입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이름이요,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P.449)
이 말씀처럼, 『희망』을 읽은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