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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위로 - 점과 선으로 헤아려본 상실의 조각들
마이클 프레임 지음, 이한음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평점 :
어떤 일이든 간에 각자의 영역에서 꾸준하게 성실히 해 온 사람들은 나름의 철학이 있다. 산림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한 사람은 나무나 풀의 생애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식당을 한자리서 오래 한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고 돈이 오가는 일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각자의 일을 통해 삶의 철학이 생긴것이다. 마치 큰 산을 올라가는 시작점과 등산로는 수백 가지 길이 있지만 끝까지 올라가면 모두 산의 정상이라는 한 점에서 만나는 것과 같이 각자의 분야는 다르지만 과정을 통해 깨달은 점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이야기하며 세상을 이해한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세상과 소통한다. 수학자가 쓴 책이고 제목이 수학의 위로라고 하기에, 수학자는 수식을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터득했을까 궁금했다.
디플롯의 책은 항상 느끼지만 책 디자인 정말 잘한다. 책 표지, 색상 배치, 글씨체, 종이 선택 등등 디자인 쪽으로는 백점이다. 제목은 수학의 위로지만 맨 처음 떠오른 숫자적인 수학이 아닌듯하다. 책은 기하학자가 살아가며 겪는 상실의 아픔을 동일한 패턴의 무수한 반복으로 연결된 프랙털을 통해 이야기한다. 책의 초반에는 글이 참 안읽힌다. 문장이 비문도 없고,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글이 안읽힌다. 내가 수학적 감각이 없어 그런건가, 일단은 서평 책임감을 가지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한 후에 읽으려고 커버만 계속 바라보며 며칠 책상에 그냥 올려두었다. 학력고사 시절 수학 백점받은 사람이 들고 가서 한시간 정도 읽기에 반응이 궁금했다. 저 책 어때? 물어봤더니 번역이 안좋아. 내용을 이해 하고 옮긴 책이 아니라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 같아. 계속 쭈욱 읽어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는데 처음 보면 문장이 어색해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고 한다. 기하학이 수학의 한 분야긴 하지만 수학의 위로라는 제목은 좀... 하길래 그 점은 나도 동감하는바였다. 원 제목은 GEOMETRY OF GRIEF였다. 번역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비탄의 기하학 정도 되겠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이 어색한거였다는 상황파악이 되고 나니 이제 읽을 용기가 생겼다. 그 점은 감안하면 되니까.
GRIEF를 원서로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같은 고전 희곡 배울 때나 쓰던 단어인 ‘비탄’으로 옮겨놔서 신의 벌을 받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으로 자꾸 연상이 되어 불편했던 부분만 빼면 중반 이후부터 책은 몰입도 있게 읽히며 내용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식물을 찍으러 다닐 때 느낀점인데 꽃이 코스모스면 코스모스, 장미면 장미, 우리는 한가지 꽃의 생김새를 떠올린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똑같이 생긴 꽃은 없었다. 사람 얼굴이 정확하게 대칭이 없고 눈코입 모양이 각자 다르듯이, 꽃잎의 모양도 약간 구부러진 것, 길이가 약간은 다른 것, 짧은 것, 뭉쳐진 것 등등 멀리 떨어져보면 똑같아 보이는 꽃들이라도 꽃무더기속에서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꽃의 생김새가 미세하게 다 달랐다. 사람도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아들 딸 우리는 다 다르게 생겼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부모랑 모습이 흡사해지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우리 생각에 우리는 각자 다 다른 개인이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그냥 눈코입 팔다리 있는 사람일 뿐이다. 나랑 똑같은 내 부모, 나랑 똑같은 내 자식들이 위로 아래로 계속 연결되어 나가는데 부모는 나이가 들어 돌아가시니 프랙털의 한 부분이 점점 소멸해나가고 또 자손들인 새로운 프랙털 조각들이 계속 생성이 된다. 내가 식물을 관찰하며 생각했던 내용들을 작가는 기하학을 통해 이야기한 듯하여 글쓴이의 생각이 여러모로 공감이 되었다.